전체 글2091 오래된 사대부집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절 - 청암사 김천에 있는 작은 절이라고 지인에게 청암사를 소개했다 아차 싶었다. 수많은 말사를 거느린 조계종 본사는 아니지만, 청암사 자체는 결코 규모가 작은 절이 아니다. 대웅전, 진영각, 육화료, 정법루, 극락전, 보광전 등 당우만 해도 여러 채요, 입구에서부터 경내에까지 시원스런 계곡을 낀 숲길이 한참이나 이어진다. 왜 청암사를 떠올리면서 ‘작은 절’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절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도량(道場)이다. 그래서인지 당우들의 모습도 결코 위압스럽지가 않고 부드럽고 포근하다. 잘 정돈되고 정갈한 아기자기함이 그런 착각을 불러온 게 아닐까 혼자 결론을 내려 봤다. 청암사가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몇 해 전 어느 봄날에 마치 운.. 2023. 1. 29. 자본주의의 노예로 산다는 것 블로그에 구글 애드센스를 연동시켜 두었었다. 포스팅한 글에 치렁치렁 광고가 매달리는게 보기 싫어서 본문의 상단과 하단에만 뜨도록 설정을 해두었었는데 최근에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몇 달 전에 비해 눈에 띌만한 수익의 변화가 포착되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 수익금이 산정된다고 설명은 되어 있지만 요즘은 하루에 고작 많아봐야 2,3백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도 한, 두달 전과 비교해 무슨 변화가 있다는 건 지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애드센스였지만 의외로 쏠쏠한 수익활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섣부른 기대가 생겨 오늘 아침에는 테스트 삼아 전체 자동광고까지 설정을 해두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가는구나 싶다. 역시나 보기 싫었다. 본문은 물론 블.. 2023. 1. 28.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싱그러운 숲길 - 기림사 경주 시내에서 감포나 양북 쪽 바닷가로 향하는 국도로 가다보면 기림사나 골굴사로 가는 삼거리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가파른 재를 넘어 오어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포항 시내에 진입할 수 있다. 이 길로도 여러 번 다녀서 절이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작 한 걸음만 움직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인데도 며칠 전에야 겨우 큰맘 먹고 기림사를 다녀올 수 있었다. 기림사라는 이름은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이라 하는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23번의 하안거(夏安居)를 보내신 곳이라고도 한다. 왜 기림사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2023. 1. 28. 가장 단순한 것의 힘 - 인생을 바꾸는 미니멀워크 '미니멀라이프' 바람이 한차례 지나간 지 오래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어내고 삶을 단순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런 사조가 처음엔 신선하게 느껴져 자발적인 행동의 변화를 유도했다면 지금은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책과 유명강사의 특강 등이 우리에게 단순한 삶을 강요하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무작정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가지고 주변을 단순하게 잘 정리하면서 사는 게 아닐런지. 미니멀라이프 또한 다양한 여러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것이 정답인 것처럼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 나 역시도 미니멀라이프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 사람이라 시간날 때마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 책장에 꽃혀있기만 한 책들을 치우고, 쓰임새가 없어진 것들을.. 2023. 1. 27. 구품연지에 비치는 석탑의 아름다움에 홀리다 - 불국사 불국사는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조계종 제11교구 본사다. 토함산은 경주 남산과 더불어 찬란했던 신라 불교문화의 성지(聖地)였다. 날씨가 쾌청한 날에 토함산 정상에 오르면 푸른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1995년 12월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창건 시기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모친인 영제부인이 새 사찰을 짓고 싶은 소원을 가져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는 기록과 삼국유사의 설화(說話) 등을 봐서는 긴 세월을 거쳐 여러 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그 모습을 완성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나온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 2023. 1. 27. 좋은 일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연휴가 길수록 출근길이 힘든 건 불변의 진리다. 닷새만의 출근길 풍경이 조금은 생경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과정을 무한반복해야 할런지 그 끝이 쉬 짐작되질 않는다.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의미없는 노동을 하고 싶지 않은 것 뿐이다. 도대체 이걸 무엇 때문에 해야 하나? 이런 의문을 품고 하는 일의 끝에 얼마나 큰 성취가 있을 지 의문이다. 좋은 일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노력의 결과가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게 끝났다 하더라도 실패의 과정에서도 분명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 밥먹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몰입할 수 있는 일. 마침내 끝냈을 때 뿌듯함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 정녕 그런 일을 만나는 .. 2023. 1. 26. 시든다 한들 피어나길 주저할까 - 경주의 봄 우리나라에 경주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은 축복(祝福)이다. 경주에 들어서는 순간의 느낌부터가 다르다. 불어오는 바람 내음이 다르고 공기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익숙한 누군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언제나 경주를 생각하면 노곤한 졸음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십여 년 이상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이 땅에 발붙이고 살 때는 좋은 걸 몰랐다. 늘 마주치는 문화재들은 지루한 존재들이었고, 전통(傳統)과 보전(保全)이라는 키워드로 변화의 기운을 억압하고 있는, 박제(剝製)된 도시에서의 일상은 무료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던 이 도시가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된 것은 그저 무심히 흐르는 세월 탓만은 아닐 것이다. 경주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 2023. 1. 26.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꽤나 오래된 취미 가운데 하나가 이름짓기다.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아마 고등학교 다니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그 때 가졌던 의문 중의 하나가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름이 왜 그렇게나 많을까 하는 것이었다. 휘(諱)라는 것은 원래 왕이나 제후 등이 죽었을 때 생전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에서 생겨났는데, 이후에는 생존해 있는 사람의 이름 자체를 휘라고 부르며 자(字)나 호(號)를 지어 이름 대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이름난 명사들은 그 본명 보다는 호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율곡, 퇴계, 추사, 다산 등등이 다 그렇다. 깊이 있는 친구 사이의 사귐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로 유명한 오성과 한음 역시 이항복과 이덕형이라는 조선 선조 때의 명신들의 호로 원래 이름보다 일.. 2023. 1. 25. 나 또한 풍경이 되어 거닐어본다 - 감은사지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다. 상투적이고 진부(陳腐)하지만 달리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서도 신라처럼 천년 가까이 유지된 국가도 드물뿐더러 경주와 같이 한 번도 도읍을 옮기지 않고 수도(首都)로서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신라를 빼고 경주를 얘기할 수도, 경주를 빼고 신라라는 나라를 논할 수도 없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 귀부(歸附)하며 신라 왕조가 막을 내린 이후 다시 천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화려했던 고대 왕국의 흔적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온전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지만 지금도 경주의 구석구석에서 세월의 파편으로 남아 있는 천 년 전 사람들의 손길을 느껴볼 수 있다.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가 여염집 빨래판으로 쓰일 .. 2023. 1. 25. 추신수 발언 논란,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아야 추신수의 발언으로 느닷없이 연초 야구계가 시끄러워졌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추신수는 댈러스 지역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소회, 3월에 펼쳐질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구성 등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발언의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대다수 언론이 부정적 뉘앙스로 보도했고, 야구팬들의 논란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추신수는 이번 WBC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일본 대표팀엔 새 얼굴이 많은데 우리는 김현수, 김광현, 양현종이 국가대표팀 터줏대감으로 이름을 올린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들이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저라면 미래를 봤을 것 같다."며 문동주, 안우진 같은 선수들이 국제 대회의 경험을 통해 외국으로 나갈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한국야구가 할 일이라고 일침을 놓은 것.. 2023. 1. 24. 눈 감았다 뜨니 한 달이 흘렀네 검은 토끼(黑卯) 해가 밝은 지도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간다. 매년 새로운 해를 앞두고는 뭔가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곤 하는데, 그 결심이란 것 또한 유효기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 법이라서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인생이다. 2023년에는 사실 큰 욕심이 없었다. 방치되다 시피된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따뜻한 훈기를 불어넣자. 매일 짧게라도 글을 쓰자. 한쪽이라도 좋으니 책 읽는 습관을 들이자. 뭐 이런 것들이다. 그간의 다짐과 다른 것이 있다면 쉬 지치지 않고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계기가 있었다는 것 정도. 1월의 끝자락에 온 지금까지도 꽤나 열심히 처음의 결심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알 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봄처럼 따뜻한가 싶더니 매서운 북극한파가.. 2023. 1. 24. 산상의 화원에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 만항재 불과 몇 시간을 차로 달려왔을 뿐인데 확연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만항재 정상에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해발 1,330m 높은 자리에 있는 숲에 들어서면 산 아래 동네보다 십여 도 이상 선선한 느낌이 든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경보도 다른 세상 이야기인 셈이다. 꽃쥐손이, 양지꽃, 노루오줌, 짚신나물 등 여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모습이 말 그대로 ‘산상의 화원(花園)’답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에 이르는 산길 전체가 꽃밭인 셈이다. 공원이나 수목원처럼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러움이 물씬 풍겨서 좋다. 한여름이라고 해도 새벽녘 만항재에서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날씨가 서늘하다. 으스름 달빛 아래 이슬이 촉촉하게 내려앉은 야생화들의 배웅을 받으며 함.. 2023. 1. 24.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1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