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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시든다 한들 피어나길 주저할까 - 경주의 봄

by 푸른가람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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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경주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은 축복(祝福)이다. 경주에 들어서는 순간의 느낌부터가 다르다. 불어오는 바람 내음이 다르고 공기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익숙한 누군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언제나 경주를 생각하면 노곤한 졸음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십여 년 이상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이 땅에 발붙이고 살 때는 좋은 걸 몰랐다. 늘 마주치는 문화재들은 지루한 존재들이었고, 전통(傳統)과 보전(保全)이라는 키워드로 변화의 기운을 억압하고 있는, 박제(剝製)된 도시에서의 일상은 무료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던 이 도시가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된 것은 그저 무심히 흐르는 세월 탓만은 아닐 것이다.

아쉽게도 시간을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해마다 꽃은 때가 되면 피어나겠지만, ‘제때’를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게다가 벚꽃은 화려하되 오래가지 않는다. 피었나 싶으면 때맞춰 찾아오는 봄비에 제 잎을 모두 날려버리고 만다.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어 떨어진 꽃잎들은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의 화려한 사체(死體)인 듯 싶다.

경주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계절마다 어울리는 볼거리가 있고 나름의 분위기가 있지만 봄날의 경주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4월쯤이면 온갖 봄꽃들이 저마다 앞 다퉈 피어나며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물 반, 고기 반이라더니 봄날의 경주는 꽃이 반이요, 사람이 반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를 꼽는다면 흰 벚꽃과 노란 유채꽃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는 풍경이 먼저 머리에 그려진다. 

물론 벚꽃은 어디서 피어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군항제(軍港祭)가 열리는 진해의 벚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어느 시골 이름 없는 길가에서 홀로 화려한 자태(姿態)를 드러내는 그것마저 아름답다. 김유신 장군묘, 대릉원 돌담길, 시내에서 보문단지에 이르는 가로수길. 벚꽃 명소가 많지만 반월성 앞 너른 꽃밭에서처럼 샛노란 유채꽃 물결이 넘실대는 가운데 흰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아름다움의 극치(極致)를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아쉽게도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해마다 꽃들은 때가 되면 피어나겠지만 ‘제때’를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게다가 벚꽃은 화려하되 오래가지 않는다. 피었나 싶으면 때맞춰 찾아오는 봄비에 제 잎을 모두 날려버리고 만다.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어 떨어진 꽃잎들은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의 화려한 사체(死體)인 듯싶다.

노천박물관 경주에서는 봄마다 화려한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반월성을 풍성하게 채웠던 흰 벚꽃이 지고 나면 첨성대 앞 너른 들판에는 샛노란 유채꽃이 춘심(春心)을 일깨운다. 천년고도의 영화는 땅속에 묻혔지만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 후손들은 봄꽃 향기에 취해 그 위를 거닌다.

좀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거나 유채꽃의 샛노란 투박함이 좋다면 분황사 앞 황룡사지에 조성되어 있는 유채꽃밭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폐사지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고마운 꽃이다. 이곳 넓은 터에도 몇 해 전부터 꽃밭이 조성되었는데 봄에는 유채꽃을, 한여름이 지나면 금계국과 코스모스를 심는다. 덕분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꽃들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진다.

벚꽃과 어우러지는 화려함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유채꽃의 수수하지만 강렬한 풍경 역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장엄하고 웅장한 동양 최고(最高)의 9층 목탑을 너른 품으로 안았던 황룡사의 영화는 이제 폐사지(廢寺址)의 땅속에 묻혔지만 천년의 세월이 흐린 뒤 후손들은 봄꽃 향기에 취해 그 위를 거닌다.

이곳에 서서 유채꽃밭의 장관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늦가을의 누런 들판이 생각난다. 옛날 어른들은 가을날 누렇게 익은 벼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들 하셨는데 어느덧 나이를 먹다보니 나도 유채꽃의 샛노란 빛에서 풍성한 가을 들녘의 풍요(豊饒)를 떠올리고 있다. 

온 듯싶더니 하룻밤 꿈처럼 가버리기에 봄이 더욱 애달픈가 보다. 그래도 봄은 봄이라서 아름답다. 계절은 매번 이렇게 순환하지만 한번 가버린 우리 인생은 되돌릴 수 없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나는 어디쯤 온 것일까? 아마도 봄은 훌쩍 지나쳤겠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풍경들을 한 컷 한 컷 카메라에 담는 매 순간이 무념무상의 시간이다. 땅거미가 지고 일상의 풍경이 어둠의 고요 속으로 사라져 갈 때 비로소 숨겨두었던 비경을 시나브로 드러낸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봄날 저녁. 이런 때를 기다려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안압지(동궁과 월지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다)가 바로 그곳이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는 매 순간이 무념무상의 시간이다. 땅거미가 지고 일상의 풍경이 어둠의 고요 속으로 사라져갈 때 안압지는 비로소 숨겨두었던 비경을 시나브로 드러낸다.

봄날의 경주는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하다. 거울처럼 깨끗한 반영(反影)을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만은 않다. 모처럼 큰마음 먹고 장비를 챙겨 안압지에 당도했건만 무심한 춘풍(春風)이 한바탕 불어온다면...... 그래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부는 대로 나름의 정취(情趣)를 맘껏 즐기면 그 뿐 아니겠는가. 

경주에서 이십여 년 이상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안압지의 야경을 접하게 된 건 경주를 떠나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가까이 두고서도 한 번도 와보지 못했었나 하는 아쉬움은 그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봄날 저녁에 맛보았던 작은 행복을 그대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어두고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 가는 순간을 기다린다. 느긋한 기다림 속에 온갖 상념(想念)이 공존한다. 불현듯 꽤 오래 전 읽었던 책 한 권이 생각난다. 눈길이 갔던 건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존재’.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별 볼 일 없는 삶을 사는 나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이겠거니. 불편하면서도 한편 묘한 끌림이 있었다.

벚꽃은 어디서 피어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어느 시골 이름 없는 길가에서 홀로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그것마저 아름답다. 경주에도 김유신장군묘, 대릉원 돌담길, 보문단지 등 벚꽃명소가 많다.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인 이석원이 책을 썼다. 그가 살아온 인생은 평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창하거나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어려서 뭔가 간절히 해 보고 싶거나 이루고 싶었던 꿈이 없었던 그는 서른여덟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그이지만 누구나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될 필요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생각은 이러하다. 누구나 배우나 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러한 자질을 갖고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안온한 관객의 자리에 만족하며 사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일 수 있음을 얘기한다. 꿈이 없다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향해 “관객이 되면 그뿐”이라며 고민하지 말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그. 이런 면에서 그는 분명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활짝 핀 꽃 앞에 놓인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엔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 - 이석원, <보통의 존재>
 
한참동안이나 가슴 속에 남는 글귀다. 아름다운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가 순식간에 시들 인생이지만 희끗희끗하게 머리엔 서리가 내리고, 주름 질 황혼이 두려워 젊음을 마다할 수야 없지 않은가. 꽃은 피면 시들게 마련이다.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맞서기보다는 시들어가는 삶 속에서도 존귀함을 잃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이것이 남은 여로의 관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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