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는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조계종 제11교구 본사다. 토함산은 경주 남산과 더불어 찬란했던 신라 불교문화의 성지(聖地)였다. 날씨가 쾌청한 날에 토함산 정상에 오르면 푸른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1995년 12월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창건 시기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모친인 영제부인이 새 사찰을 짓고 싶은 소원을 가져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는 기록과 삼국유사의 설화(說話) 등을 봐서는 긴 세월을 거쳐 여러 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그 모습을 완성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나온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석굴암을 만들었고 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일화가 워낙 유명해서 그가 지은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30여 년의 긴 세월이 걸린 워낙 큰 공사였기에 정작 김대성은 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불국사는 신라 사람들이 그렸던 불국토(佛國土), 즉 피안(彼岸)의 이상향을 옮겨놓은 것이다. 부처님의 나라를 향한 신라인의 염원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 있다.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娑婆世界),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極樂世界),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가 그것이다. 이 셋은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을 중심으로 전체를 구성했다. 황룡사가 거대한 규모로 압도(壓倒)하는 절이라면, 불국사는 치밀(緻密)한 구성으로 아름다움을 극대화(極大化)했다.
임진왜란 때는 불교 신자였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가 불을 질러 대부분의 목조건축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경주 일대를 점령한 왜군들이 절 구경을 왔다가 절에 보관하고 있던 무기들을 발견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맹독을 감추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던가. 대웅전의 장대석에 지금까지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다.
유홍준 교수는 이렇듯 영욕(榮辱)의 역사를 함께 한 불국사를 문화재 답사(踏査)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누구나 꼭 한번은 보고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궁극(窮極)이 바로 불국사라는 의미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불국사는 너무나 유명한 절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고, 그 흔한 수학여행이나 경주 여행을 통해 한번쯤은 불국사 경내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불국사를 잘 안다 여길 지도 모르겠다. 불국사를 와보지 않았더라도 다보탑과 석가탑, 청운교와 백운교 등의 이름을 줄줄이 꿸 정도니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경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인연 덕에 불국사는 꽤나 익숙한 장소였다. 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불국사 입구 주차장에 당도한다. 낙엽이 무참히 떨어지는 늦가을이면 아무런 이유 없이 발걸음이 절로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불국사의 진면목을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불국사가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 보는 눈이 없었던 나의 여행은 그저 남들 움직이는 대로 별다른 감흥(感興) 없이 불국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에 그쳤다. 그러다 달빛 아래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고, 극락전 앞 복돼지상에 입을 맞춰 보기도 했다.
문화재에 조예(造詣)가 깊은 전문가들은 불국사의 아름다움 가운데 으뜸을 석축으로 꼽는다. 다보탑, 석가탑도 아니요 청운교, 백운교도 아닌 석축(石築)이라니. 산자락에 위치한 불국사는 불가피하게 경사지를 두개의 단으로 조성하고 거기에 석축을 쌓았는데 아랫단은 자연미가 드러나게 쌓았고, 윗단은 잘 다듬은 돌로 쌓아 인공미가 부각(浮刻)된다는 설명이다.
무심코 보아 넘겼던 석축 아래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석축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아랫단은 투박한 자연석을 쌓아 올렸고, 윗단은 말끔하게 다듬어진 돌을 맞춰 단아한 모습이었다. 특히, 자연석의 초석을 깎은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얹을 장대석을 자연석에 맞춰 깎은 ‘그랭이 기법(技法)’의 석축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극락전 안양문에서 연화교를 내려다보며 연꽃무늬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세심히 살펴보는 것도 불국사 답사의 또 다른 재미거리다. 시간대에 따라, 빛의 방향과 강약에 따라 선명함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돌계단 위에 돋아난 연꽃을 볼 수 있다.
몇 해 전 돼지해를 맞아 극락전 앞에도 복돼지상이 세워졌다. 많은 재물을 얻어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복돼지상을 만지거나 입을 맞추곤 하는데 원래 극락전의 복돼지는 현판 뒤에 숨어 있으니 제대로 복(福)을 구하려면 여기에 빌어 보는 편이 낫겠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니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느지막이 우리 문화의 진수(眞髓)를 하나 둘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석축과 연화교의 연꽃 말고도 불국사의 감춰진 아름다움은 여럿 있으니 꼼꼼히 찾아보는 것 또한 불국사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불국사 앞마당에는 구품연지라고 불리던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청운교와 백운교 아래에 동서로 길이가 39.5미터 남북으로는 폭이 25.5미터가 되는 타원형 형태였는데 1970년대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하면서 불국사 앞마당의 나무가 훼손된다는 점, 관람객의 동선 등을 고려해 복원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쉬운 선택이었다. 구품연지가 있었더라면 불국사는 불국토의 구현이라는 당초 건축 목적에 부합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관람객이 설 자리는 좀 줄어들었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보다 큰 울림을 주었으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매번 범영루 아래를 지날 때면 그 이름처럼 화려한 누각이 석축과 함께 구품연지에 비치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불국사의 또 다른 상징이다. 나란히 국보 20호와 21호로 지정되어 있는 두 탑은 신라 불교예술의 정수(精髓)로 평가받고 있다. 석가탑은 완벽한 비례와 직선미를 선보이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화려한 다보탑은 자유롭고도 독특한 형식이어서 두 석탑이 대칭되면서도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구성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다보탑보다 수수한 시골 아낙같이 생긴 석가탑에 더 정이 가는 건 왜일까. 백제 장인(匠人) 아비지와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에다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면서 석가탑의 가치는 한층 더해졌다.
1966년 석가탑을 수리할 때의 일은 차라리 안타깝다. 전문가가 아닌 인부들이 나무 전봇대를 기중기 삼아 엉성하게 작업을 진행하다 전봇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석가탑의 일부가 파손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후진적인 문화재 관리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지금이라고 해서 많이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궁궐에 주로 있는 회랑(回廊)이 있는 절이라는 점에서도 이채롭다. 그래서인지 불국사의 회랑을 걸을 때면 고궁을 걷는 기분이 든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신라의 달밤,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의 풍경은 얼마나 경이(驚異)로울까. 달빛이 포근하게 석가탑에 내려앉아 백제 석공의 어깨를 어루만져 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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