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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나 또한 풍경이 되어 거닐어본다 - 감은사지

by 푸른가람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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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다. 상투적이고 진부(陳腐)하지만 달리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서도 신라처럼 천년 가까이 유지된 국가도 드물뿐더러 경주와 같이 한 번도 도읍을 옮기지 않고 수도(首都)로서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신라를 빼고 경주를 얘기할 수도, 경주를 빼고 신라라는 나라를 논할 수도 없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 귀부(歸附)하며 신라 왕조가 막을 내린 이후 다시 천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화려했던 고대 왕국의 흔적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온전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지만 지금도 경주의 구석구석에서 세월의 파편으로 남아 있는 천 년 전 사람들의 손길을 느껴볼 수 있다.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가 여염집 빨래판으로 쓰일 정도니 후세 사람들의 무지를 욕하기보다는 지금도 풍성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몇 해 전 새로 뚫린 추령터널을 지나 동해바닷가 문무대왕릉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지막한 산 아래 우뚝 서 있는 두개의 탑을 만나게 된다.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두 탑이 바로 감은사지 3층 석탑이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그 감동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아! 감은사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로 끝맺어야 했던 바로 그 탑이다.

이 탑에만 서면 나는 늘 작아진다. 탑의 높이가 무려 13.4미터에 이르니 압도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천년을 넘게 한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에서 더 큰 경외감을 느낀다. 영겁의 세월을 묵묵히 살아왔다는, 엄청난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견뎌왔음에 고개 숙이게 된다.

유홍준 교수는 추령재를 넘어 감은사 가는 길을 우리나라에서 첫째, 둘째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길이라 극찬하고 있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산과 호수와 내를 끼고 구불구불 펼쳐지는 이 길을 지나노라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곤 했다. 사람들의 수많은 추억들이 길 위에 겹겹이 쌓였을 테지. 

지금은 새로 생긴 터널을 이용해 빠르고 수월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예의 그 절경을 오롯이 다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또한 크다. 이곳을 지날 때면 어린 시절 버스를 타고, 혹은 외딴 시골 마을에 물건을 팔러 다니시던 외삼촌의 트럭에 올라타고 구절양장(九折羊腸)과도 같은 추령재를 넘던 모습이 아련하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추억이 나를 이끌 때면 추령재 옛길로 차를 달린다. 지금은 찾는 이가 없어 무척 쓸쓸한 길이다. 봄, 가을에 동해 바닷가를 찾는 이가 있다면 이 길을 달려보라고 일러주곤 한다. 

추령재의 원래 이름은 가내고개였다. 이 고개를 경계로 서쪽으로는 황룡동에서 발원한 북천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양북면 장항리에서 발원한 대종천이 흘러 동해에 이른다. 1994년에 경주에 큰 가뭄이 든 적이 있었는데 이 고개에 터널을 뚫어 하늘이 노했다는 이야기가 시민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기도 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유서 깊은 고개였다. 

추령재 너머 푸른 물결 넘실대는 동해 바다를 지척에 둔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천년 고찰 감은사가 있다. 지금은 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감은사지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국가의 위엄을 세우고, 시시때때로 침범해 오는 동해의 왜구(倭寇)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염원(念願)을 담아 세운 절이다. 불행히도 문무왕은 생전에 사찰의 완성을 보지 못했고, 아들인 신문왕 2년에 이르러 마침내 감은사가 완공된다.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왕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기며 대왕암에 묻혔다. 어둠을 뚫고 대왕암 너머 문무대왕의 호국의지를 닮은 동해의 태양이 붉게 떠오르고 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으니 그의 수중릉이 감은사지 근처 동해바다에 있다. 이처럼 지극한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 했고, 동해에서 외적을 물리치느라 지칠까 감은사에 와 편히 쉴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었다 한다. 지금도 감은사지에 가면 금당 자리 아래 석축 사이로 공간이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척에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과 함께 지금까지도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겨주고 있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전설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지금의 지형을 보면 동해로 연결되는 대종천과 감은사지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게다가 문무왕이 수중릉(水中陵)에 묻혔을 가능성 자체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오래된 유물을 볼 때는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천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변의 지형도 큰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동해까지 이어지는 대종천의 물길을 실제로 이 절로 끌어 들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들 덕분에 경주 여행이 한껏 풍성해질 수 있다. 늘 떠오르는 동해의 태양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죽어서도 외적의 침입을 걱정했던 군주의 마음이 투영(投影)되기 때문이다. 자욱하게 피어나는 물안개 속을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들의 날갯짓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해돋이의 장엄한 풍경 앞에서 잠시나마 작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벗어 던진다. 

감은사는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이라는 통일신라 절집 배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1탑 중심 형태에서 통일신라 시기 쌍탑 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형태인 것이다. 금당 앞에 세워져 있던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형태로, 동탑과 서탑은 서로 같은 형태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껏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한 쌍의 삼층석탑이 신라 조형예술의 절정이라고 칭송받는 석가탑의 시원(始原)이라 하니 그저 허투루 보아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

감은사지는 그다지 유명한 사찰은 아니다. 모르고 지나치는 이가 많다. 어떤 이는 양북 바닷가의 문무대왕릉을 보러 가는 길에 덤으로 이곳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불국사나 대릉원 같이 이름난 명소에 못지않은 역사적 가치를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천년의 세월 속에 천년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 바로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분명 오래되고, 낡고, 허물어져 가는 곳인데도 이곳에 오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져서 돌아간다. 여러 차례 복원(復原)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금이 가 있고, 천여 년의 비바람 속에 으스러진 자국이 남아 있는 두 개의 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힘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해질녘 감은사지의 풍경은 상상력을 일깨워준다. 때마침 이는 바람에 풍경 소리가 그윽하게 울리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탑 그림자가 동해까지 길게 늘어지는 한없이 여유롭고 고요한 그림 속에 나 또한 풍경이 되어 거닐어본다.

감은사지는 결코 볼거리가 많은 곳이 아니다. 그리 넓지 않은 절터에 휑하니 두 개의 탑만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서있다. 맞은편에는 산과 들과 강이 어우러져 넓은 동해 바다로 이어진다. 세찬 바닷바람과 맞닥뜨려야 하는 겨울에는 잠시도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줄 것도 없는 이곳이 왜 이리도 끌리는 것일까.

이곳에 오면 늘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몇 번을 거닐어 보곤 한다. 이 절의 금당 터는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죽어서도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부왕 문무왕의 유지(遺旨)를 받들어 이 절을 지은 신문왕이 용이 절에 출입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고 하는 설화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이 탑에만 서면 나는 늘 작아진다. 물론 탑의 높이가 무려 13.4m에 이르니 압도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탑의 높이보다는 천년을 넘게 한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에서 더 큰 경외감을 느낀다. 이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데 영겁(永劫)의 세월을 묵묵히 살아왔다는, 엄청난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견뎌 왔음에 고개 숙이게 된다.

이곳 풍경은 상상력을 일깨워준다. 절 앞의 대종천에 물이 넘실넘실 대고, 넓은 들판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때마침 이는 바람에 풍경소리가 그윽하게 울리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탑 그림자가 동해 바다에까지 길게 늘어지는 한없이 여유롭고 고요한 그림 속에서 나 또한 풍경이 되어 거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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