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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구입한 캠핑용품 중에 만족스러운 것들.. 최근에 영입한 캠핑용품들이 꽤 되는데요. 그 중에는 잘 샀다 싶은 것도 있고, 사고 나서 후회한 것들도 물론 있습니다. 오늘은 꽤 만족도가 높았던 몇가지 소개시켜 드릴까 합니다. ​ ​ 1. 800도씨 화로대 캠핑 초기에 구입했던 저렴한 화로대 나름 잘 사용해 왔는데 어쩌다 잃어버리는 바람에 새로운 화로대로 영입한 800도씨 화로대입니다. 매쉬창이 있어 양쪽에서 불이 잘 보이고, 조립이 용이한데다 해체하면 부피가 작아 수납도 용이합니다. 화로대야 워낙에 많고 많아서 이게 최고다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디자인과 실용성 면에서 모두 괜찮은 것 같아 잘 샀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캠핑용품입니다. * 800도씨 화로대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 ​ 2. 우드 인디언 행어 감성캠핑을 흉내라도 내 보려고 고민 끝에 지른 .. 2022. 6. 8.
새도 쉬었다 넘어가는 험한 고개 - 문경새재 문경새재의 이름을 두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다. 새재를 뜻 그대로 한자로 풀이하면 조령(鳥嶺)이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어가는 고갯마루니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한 고개라는 얘기일 것이다. 혹은 새로 만들어진 재라 해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의 사이에 있어 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나, 하나의 별칭일 뿐 타당하진 않을 것 같다. 문경새재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에 있다. 이 재는 예로부터 영남과 수도권을 잇는 군사, 행정, 문화, 경제적 요충지(要衝地)였다. 조선시대 한양에 과거를 보러 올라가는 영남유생이 필히 거쳐 가야 할 영남대로의 관문(關門)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신립 장군이 군사상 요충지인 문경새재 대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도 왜군에게 처참한 패배.. 2022. 3. 1.
숨겨진 보석 같은 전나무숲길의 아름다움 - 김룡사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여러 차례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인지라 인파로 넘쳐났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잘 생긴 전나무들이며, 숲이 선사하는 상쾌한 공기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떠올릴 때면 새벽의 고즈넉함을 그려왔었다. 하지만 실제로 접한 월정사 전나무숲은 숲이라기 보단 잘 정비된 산책로에 가까웠다. 거기도 처음에는 아는 사람만이 찾는 보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달라진 운명을 맞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김룡사 숲길을 홀로 걸으며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떠올렸다. 물론 이 길이 월정사나 내소사 전나무숲길처럼 유명한 곳은 아니다. 그만큼 잘 정비되지는 않았지만 절의 초입에서.. 2022. 3. 1.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체취를 따라서 - 백담사 아마도 백담사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백담사는 여러 이유로 유명한 곳인데, 최근에는(최근이라고 해봐야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전직 대통령이 칩거(蟄居)했던 곳으로 세상의 이목을 한몸에 받기도 했었다. 원래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조선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한 곳으로 많이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백담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내설악(內雪嶽)의 깊은 오지(奧地)에 이유로 백담사를 직접 찾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영상으로 접했던 백담사 모습은 전형적인 산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특히 한겨울 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찾아가는 길도 무척 험하고 가파른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있는 줄로만 알았었다. 예전에는 절에 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 2022. 2. 28.
화마의 상처를 딛고 푸름을 되찾다 - 낙산사 그냥 봐서는 엄청난 화재를 겪었던 곳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낙산사를 찾았었지만 큼지막한 불상과 바닷가 암벽 위의 암자, 그리고 푸른 동해 바다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다. 낙산사는 2005년 4월 6일에 일어난 산불로 사찰의 모든 것을 잃었었지만, 고맙게도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사상 최악이라던 고성․양양지역의 산불은 천년 고찰 낙산사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아갔다. 뉴스 화면으로 전해지던 시뻘건 불덩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거센 바람을 타고 수십여 미터를 날아가는 불씨를 막아내기에 사람들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원통보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각들과 함께 보물 제479호 낙산사 동종도 그때 소실되었다. 쇳덩어리를 녹여 없앨 정도의 화마(火魔).. 2022. 2. 28.
꽃무릇은 지고, 단풍은 불타오르고 - 선운사 산 아래 실개천이 흐르고 울창한 숲이 내를 감싼다. 가끔씩 구름이 쉬었다 간다. 한껏 여유로운 풍경이다.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가도 좋다. 선운사는 꽃이 있어 아름다운 절이다. 봄이면 동백꽃, 여름이면 배롱나무꽃, 그리고 가을이면 꽃무릇이 붉게 타올라 절을 가득 채운다. 우람한 느티나무와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사천왕처럼 호위(護衛)하는 숲길을 지나 선운사에 당도한다. 선운사는 잎이 지고 난 뒤 꽃이 피어 상사화라고 불리는 꽃무릇 군락지(群落地)로 유명하다. 도솔천 계곡과 산비탈을 수놓는 가을 단풍도 아름답기로는 뒤지지 않는다. 사시사철 붉디붉은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난다지만 때를 잘 맞추지 못하면 허사다. 꽃이란 것이 또 언제 피었냐는 듯 소리도 없이 져버리니까. 이번에도 그랬다. 그 유명한 선운사 꽃무릇을.. 2022. 2. 27.
풍요 속 배고픔의 향수를 떠올려본다 - 학원농장 청보리밭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가곡 중에서 이곳에 오면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어릴 적엔 바람에 넘실거리는 보리밭이 참 흔했었는데 이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되었으니 무상한 세월을 느끼게 한다. 그리운 풍경을 보러 발품을 팔아보는 것도 좋다. 서해 바다와 접한 고창 땅 학원농장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청보리밭을 한번 걸어보는 건 어떨까. 이 농장은 1960년대 초 전직 국무총리를 지냈던 진의종 부부가 함께 황무지였던 40만 평의 야산을 개간했다고 한다. 처음엔 뽕나무를 심어 양잠업을 했고, 70년대 들어서는 목초를 재배하여 한우를 키우다가 90년대 초에 설립자의 장남이 귀농하여 정착하면서 보리와 콩을 대량으로 재배하.. 2022. 2. 26.
산책하듯 거닐고 싶은 아름다운 수목원 - 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은 이채롭게도 외국인이 설립한 곳이다. 1979년 우리나라에 귀화해 민병갈이라는 이름을 얻은 칼 밀러가 오랜 세월 동안 일궈낸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다.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까지 받았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정작 천리포수목원 구경은 『정원 소요』라는 책이 먼저였다.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그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천리포수목원의 구석구석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됐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글뿐만 아니라 사진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강렬하지 않되, 담백하며 기품이 있다. 이른 봄날을 가득 채워주는 목련처럼 부지런한 심성을 지닌 사람일 거라 생각해 본다. 봄처럼 화사하되.. 2022. 2. 26.
바다 옆에 놓인 사막을 걷다 - 신두리 해안사구 나는 지금 사막을 걷고 있다. 몇 걸음을 떼면 이내 신발은 모래투성이가 된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온통 입속에 모래 알갱이들이 사각거리는 게 느껴진다. 태안반도에 있는 신두리 해안사구라는 곳이다. 사구라고 부르는데 모래 언덕이란 뜻이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로 파도에 밀린 모래가 바닷가에 지속적으로 쌓이고, 썰물 때면 햇빛을 받아 물기가 빠지면서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가 쌓이게 된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선물이 아닐까 싶다. 전체 길이가 3.5km 폭은 200미터에서 넓은 곳은 1.3km, 제일 높은 곳은 4.6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해안사구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조금 걷다 보니 누군가 모래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 흔적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 2022. 2. 26.
함양의 축복, 아름다운 천년의 숲 - 함양 상림 함양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축복과도 같은 숲이다. 여름엔 희고 붉은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가을이면 눈처럼 떨어져 쌓이는 낙엽이 애잔하면서도 화려한 빛의 향연을 선사한다. 신라 말기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고을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물길을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었던 것이 지금과 같은 큰 숲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대관림으로 불렸다는데 큰 홍수가 나 숲의 중심부가 파괴되자 그 틈으로 집들이 들어서며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다가 지금은 상림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3만 6천여 평에 이르는 광활한 터에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여름에는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환상적인 단풍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매번 상림을 갈 때면 함양 사람들.. 2022. 2. 26.
정자와 계곡 따라 선비의 발걸음을 좇다 - 화림동계곡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만큼 함양 땅은 영남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었다. 선비들이 시문을 짓고 풍류(風流)를 즐겼던 정자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시원스러운 계곡이 끝없이 이어진다. 함양에는 선비문화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길은 화림동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화림동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육십 리를 흘러내리면서 구석구석마다 기이한 바위와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 한양에 과거보러 올라갈 때면 반드시 지나야했던 길목이었다고 한다. 거연정에서 시작한 아름다운 길은 두시간 정도를 걸어 농월정에서 마친다. 거연정은 계곡 가에 있어 그 풍광이 탁월하다. 정자에 오르면 계곡을 흐르는 세찬 물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 정도다. 거연정(居然亭)이란 자연에 머문다는 뜻이니 놓인.. 2022. 2. 26.
지리산을 마당에 앉힌 집 - 산천재 따뜻한 봄바람 불어오는 3월의 어느 날에 무작정 산청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는 산천재 때문이었다. 지리산 자락 아래 산청 고을에 자리 잡고 있는 남명 조식의 옛집 산천재 역시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 덕분에 다녀온 여정 가운데 한 곳이다. 책 표지에 담긴 산천재의 모습은 따사로웠다. 몇 채 되지 않는 건물과 너른 마당을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주는 충만함은 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산천재를 향한 짝사랑은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때마침 5백 년도 훨씬 넘은 유명한 남명매(南冥梅)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려 멀리서 찾아온 빈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실제 본 산천재는 전체적으로 좀 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 사진 속의 모습과 달리 고운 단청으로 .. 2022.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