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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프로야구의 '큰 손' 삼성이 사라졌다

by 푸른가람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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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시즌 중반 13연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삼성라이온즈를 두고 대폭적인 투자를 요구하는 팬들의 요구가 들끓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돈성'의 시대는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야구계의 중론이다. '돈성 신화'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삼성 최고위층의 우승 조급증 탓이었다. 그 당시 삼성의 모토는 제일주의였다. 뭐든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스포츠 분야에도 동일하게 작동됐다. 

과거 삼성라이온즈는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구축하고 최강의 전력으로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매번 정상 일보 직전에서 무너지며 안타까움을 샀었다. 그 과정에서 1984년에는 '져주기 게임'이라는 패악을 저질렀고, 2000년대 초반까지 거액을 들여 임창용, 김기태, 심정수, 박진만 등 내노라하는 당대의 스타 선수들은 물론, 한국시리즈 무패 신화에 빛나는 해태타이거즈 김응룡 감독까지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돈성'이니 '악의 제국'이니 하는 비난들이 자연스럽게 삼성 구단을 향했다. 

삼성팬들조차도 구단의 방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삼성라이온즈가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2016년 이후로는 이마저도 과거의 향수가 되고 말았다.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삼성과 같은 그룹이 화끈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지만 이제 더이상 과거와 같은 과감한 투자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모기업인 삼성 그룹의 기조가 변화했다는점이다. 지분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 운영은 삼성그룹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빌미가 되었던 국정농단 사태에서 삼성그룹은 스포츠분야 투자라는 명목으로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로 사법처리까지 받았다. 이후 삼성그룹은 그룹 내 스포츠단 투자에 인색해졌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배구, 농구 등 모든 프로 스포츠가 동일하다. 과도한 비난을 받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투자만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과거처럼 삼성이 우승을 목표로 선수들을 사들이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 힘들것이다. 

두번째로 이미 우승 경험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삼성이 우승에 목매달았던 것은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다. 압도적인 우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만 하더라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19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 최다 준우승팀의 불명예를 이어가고 있었다. 최상의 전력을 갖추고도 매번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매듭을 맺지 못했던 삼성으로선 정말 우승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혔던 혈이 뚫리듯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인 우승을 거두고 난 이후 삼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2005년과 2006년에 두산과 한화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거뒀고,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정규리그 5연패,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이미 달성했다. 통합우승을 포함해 무려 8번의 우승 경험을 가진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한 삼성이 이제 한국시리즈 우승컵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세번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제도의 변화다. 샐러리캡 도입으로 구단이 자금력이 풍부하다고 해도 과거처럼 거액의 투자를 남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꼭 필요한 포지션에 적정한 지출을 해야만 장기적인 팀 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돈이 있다고 해서 예전처럼 앞뒤 재지 않고 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삼성이 과감한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구단 운영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2017년 스토브리그에서 FA로 강민호를 영입한 이후 2020년에는 두산으로부터 거포 1루수 오재일을 영입한 것 역시 삼성의 투자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가성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양의지(152억)나 이대호(150억), 김현수(115억), 최정(106억)처럼 100억대를 넘는 초대형 FA계약에는 무척 신중해 보인다. 팀에 필요하지만 과도한 지출이 수반되는 경우라면 협상 테이블에서 빠지는경우가 많다. 철저히 투자 대비 효율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삼성은 2020년 시즌을 마치고 두산으로부터 오재일을 영입했다. 계약기간 4년에 50억원 규모였다. 장타력을 갖추었으면서 안정된 수비력을 가지고 있는 1루수는 삼성으로선 꼭 필요한 포지션이었다. 2021년 타율.285 25홈런 97타점, 장타율.512 OPS .878의 성적을 거뒀던 오재일은 2022년 타율 .268 21홈런 94타점과 장타율 .491, OPS .836을 기록했다. 

1986년으로 이미 30대 후반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에이징커브를 염려할 시점인데다 두번째 시즌에 전반적으로 성적 하락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팀의 중심타자로 몇 년간은 더 활약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계약기간이 2년 남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오재일의 영입은 삼성으로선 아주 효율적이었다. 중대형주 위주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쏠쏠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강민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강민호는 삼성라이온즈의 연고지역인 포철공고 출신이었지만 워낙 롯데의 이미지가 강해 2018년 시즌을 앞두고 삼성으로 짐을 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나 큰 충격을 안겼었다. 삼성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공격형 포수 이미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2022년 시즌 들어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부상 여파도 있었고 특히나 체력적 부담이 큰 포수 포지션이다 보니 향후 성적도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공격력을 다시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김태군, 김재성, 김민수, 이병헌 등 대체 포수자원이 넘쳐나는 삼성이다보니 충분한 휴식을 주고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다면 팀 타선에 무게감을 실어줄 수 있는 자원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삼성의 투자 기조는 박진만 감독 부임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갑내기 이승엽 두산 감독이 양의지라는 부임 선물을 받았지만 박진만 감독은 오히려 팀의 FA자원이었던 김상수와 오선진마저 전력에서 이탈했다. 속으로야 이런저런 불만이 많겠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훈련을 통해 기본기를 다지고, 현재의 팀 전력을 극대화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은 박수칠만하다.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한 전력 향상은 프로구단 운영에 있어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외부 수혈없이 단기간 내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도 하다. 감독대행 시절 보여준 강단있는 경기 운영과 선수단 장악력이 박진만 감독의 장점이다. 확고하게 자리잡은 삼성의 새로운 투자 원칙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박진만 감독의 삼성호, 2023년 시즌 성적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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