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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

by 푸른가람 2009.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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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는 야구계 속설이 있다. 이 말은 현장의 야구지도자 뿐만 아니라 야구해설가들에게도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다. 흔히 야구중계를 듣다보면 "오늘 상대선발이 좌완이기 때문에 우타자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거나 "좌타자를 겨냥한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가 등판"했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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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언론사에서 펴낸 스포츠닥터라는 책에서 조차 이 속설은 "진실"로 소개되어 있다. 그 논거는 이러하다. 좌투수가 좌타자를 상대하는 경우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타석의 타자에 당도하는 시간이 우투수에 비해 짧기 때문에 타자가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을 보고 타격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말이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타당성이 없는 말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좌타자가 오른손 언더핸드 투수에게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04년 일본무대에 진출했던 이승엽은 이같은 속설의 신봉자인 발렌타인 감독에 의한 '플래툰 시스템'의 희생양이 된 적도 있다. 현재까지도 이 속설이 알게 모르게 야구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궁금했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떠할까?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을 친다는 양준혁, 김상수의 등장 이전까지 삼성라이온즈 부동의 1번타자였던 박한이, 삼성의 젊은피 최형우와 채태인 등 삼성을 대표하는 4명의 좌타자를 대상으로 실제 기록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내가 원하는 기록을 쉽게 찾기는 어려웠다. 스탯티즈의 기록이 가장 풍부하긴 하지만, 상황별 기록의 경우 2008년 이후의 기록만 제공되고 있다. 좌타자 전체를 표본으로 좌타자 상대의 타율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어려웠다.(이 부분은 검색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일단 검색 가능한 자료만 제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좌타자가 좌투수에 약하다는 속설은 폐기처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준혁 등 4명의 좌타자들은 좌투수에 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투수에 비해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 표본 자체가 한정되어 있고, 내노라하는 삼성의 좌타자 4인방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반론의 여지가 많다는 것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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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양준혁의 기록을 살펴보자. 2008년 그는 114경기에 출장해 .278의 타율을 기록했다. 우투수(84경기 269타수 72안타)를 상대로는 .268의 타율을 기록한 것에 비해 좌투수(30경기 116타수 35안타) 상대로는 .302로 월등히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올시즌 초반 타격감이 좋지 않는 양준혁임을 감안하더라도 좌투수가 나온다고 양준혁을 빼고 우타자를 기용한다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다. 2009년 기록을 보더라도 우투 상대 .267 좌투 상대 .286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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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의 경우는 해석하기 따라 이론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박한이는 지난해 104경기에서 .316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 중 우투(73경기 259타수 83안타) 상대로는 .321의 고타율을 기록했으며, 좌투(31경기 111타수 34안타) 상대로는 .306의 타율을 기록했다. 단순 타율만 비교하자면 좌투수에 약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좌투수를 상대로 3할이상을 친 타자에게 좌투수에 약하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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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와 채태인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형우는 우투수 상대 타율 .268, 좌투수 상대 타율 .299을 기록했고, 채태인은 비록 경기 출장수는 적었지만 우투수 상대 타율이 .251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좌투수 상대 타율은 3할을 훌쩍 넘었다.

기록 자체가 야구의 전부인 것은 물론 아니다. 감독이나 야구전문가나 팬들 모두 통계 수치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에서의 기억이 더 강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늘 잘치는 타자인 것 같았는데 기록을 보면 2할대 중반에 머물러 있는 선수도 있고, 통산타율은 늘 3할을 넘나들어도 결정적 챤스를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선수에 대해서는 평가가 야박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좌타자가 좌투수에 약하다는 속설이 너무 맹신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혹시라도 좌타자가 좌투수에 약한 것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투구와 타격 매커니즘에서 오는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속설의 맹신으로 인해 서로를 상대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이 글에 제시된 기록은 스탯티즈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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