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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프로야구 중계, 80년대로의 회귀

by 푸른가람 2009.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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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됐습니다.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는 대단했지요. 프로의 개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그때지만, 어디든 빈 공간만 있으면 조잡하게 만들어진 글러브를 끼고 박철순이라도 된 양 공을 던지고, 배트라기 보단 장난감에 가까운 방망이로 홈런왕 이만수 흉내를 내는 꼬맹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공영방송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프로야구단을 운영했던 MBC 덕분에 야구팬들은 휴일 낮경기는 물론, 평일 야간경기도 TV화면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중계 뿐만 아니라 밤이면 하이라이트를 편성하기도 했지요. 경쟁사였던 KBS 역시 정권에서 주력사업(?)으로 밀고 있는 프로야구의 흥행을 나몰라라 하긴 어려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채널이라고 해봐야 고작 네개에 불과했습니다. 그중에도 KBS-3TV(지금의 EBS)를 제외한다면 KBS 1,2TV와 MBC가 선택할 수 있는 모두였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에 서울방송이 개국을 해 지상파채널이 네개로 늘어나긴 했지만 지금처럼 프로야구 중계가 활성화된 것은 케이블방송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을 넘어설 시즘의 일입니다.

한정된 채널에서 거의 매일 펼쳐치는 프로야구 3, 4경기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만 해도 거의 '꿈'같은 얘기였습니다. 정권의 전폭적 지원 아래 방송사의 열정적인 TV중계가 있었다고는 해도 고작 일주일에 서너경기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것마저 감지덕지한 시대였습니다.

프로야구가 초기에 7,80년대 고교야구의 열기와 지역감정을 절묘하게 이용해 흥행에 성공한 이후 1990년대 프로야구의 인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습니다. 1995년 프로야구의 르네상스 이후 한국스포츠TV(1993.12월 개국, 1995년에 SBS 스포츠채널로 변경) 하나 뿐이던 스포츠채널은 이후 KBS위성방송을 거쳐 KBS 스포츠N, MBC ESPN, 엑스포츠 등이 연달아 개국하면서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프로야구의 경우도 박찬호의 빅리그 진출을 계기로 메이저리그 경기가 국내에 생중계된 이후 야구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짐에 따라 기대수준에 부응하려는 스포츠채널들의 다양한 변화와 시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빰빠빰빠빰 빰빠빰빰~"으로 시작되는 경쾌한 시그널의 MBC ESPN과 '치고 달려라'의 KBS 스포츠N 이었습니다.

4개 스포츠채널이 매일 펼쳐지는 4경기를 모두 생중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은 프로야구팬들에겐 말그대로 축복이었지만, 이승엽이 한국 프로야구 흥행의 발목을 잡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 일본무대에 진출한 '국민타자' 이승엽을 국내 방송사들이 그냥 놔둘리 만무했습니다. 최고의 흥행상품 박찬호가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상황에 대체상품이 필요했던 상황과 맞아떨어졌습니다.

요미우리 이적 첫해인 2006년 일본진출후 최고의 한해를 보낸 이승엽의 홈경기 중계권을 확보한 SBS 스포츠채널은 그야말로 대박을 치게 됩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MBC ESPN이 원정경기 중계권마저 따내게 되면서 국내 프로야구 중계가 뒤로 밀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팬들의 반발에 스포츠채널들은 스포츠와는 전혀 동떨어진 케이블채널을 잠시 빌려 국내 프로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꼼수를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줬던 시절이었습니다.

2009년 프로야구 시즌은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열기를 업고 개막됐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흥미진진한 시즌이 될 거란 기대가 컸습니다. 지난해 관중 500만을 넘어 올해는 1995년의 시즌 최다관중 기록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방송사와의 중계권 협상이 발목을 잡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KBO(중계권 대행사는 에이클라)와 방송사간의 중계권 협상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방송사의 담합과 협박이 전격적으로 프로야구 중계를 결정했던 '디원'채널을 며칠만에 굴복시킨 것인지, 에이클라의 무리한 요구가 협상의 걸림돌이 된 것인지는 추후 밝힐 문제겠지만 정작 야구팬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과거로 회귀한다고 하더니 프로야구 중계도 역시 80년대로 되돌아가는 듯 합니다. 당분간은 일주일에 서너 경기 중계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네요. 야구팬들이 언제까지 에이클라와 방송사간의 지루한 중계권 협상을 애태우며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한 현실입니다.

까짓거 올한해동안 야구중계 안봐도 괜찮습니다. 충분히 참을 수 있습니다. 불편하기는 해도 문자중계도 있고, 조악하기는 해도 아프리카 중계도 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직접 야구장을 찾는 수고를 감수하면 됩니다. 다만, 화가 나는 것은 야구중계를 못본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방송사들이 프로야구의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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