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건 아닌데 참 많이 걸었던 날이었다. 입구를 착각했던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한참을 걷다 “뭔가 잘못 됐구나”는 느낌이 퍼뜩 들긴 했지만 되돌아가기 귀찮아서 결국 둘레가 1,800미터에 달하는 해미읍성을 한 바퀴 돌게 된 것이다.
관광객 중에 나처럼 해미읍성 둘레를 걸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문이야 동서남북 여러 개 있을 테니 그 중에 하나라도 열려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정문을 빼고는 모두 굳게 잠겨있었던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런 경험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며 혼자 위안을 삼았다. 당장의 고생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그리운 추억(追憶)이 되는 것처럼 그날의 고생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다.
이전에 다녀왔던 낙안읍성과 성곽(城廓)의 느낌은 비슷하지만 성 안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낙안읍성은 내부에 일반인들이 숙박할 수 있는 민속마을이 있어 가득 찬 느낌을 주는 반면, 이곳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시원스럽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때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축조했는데, 둘레가 1,800미터 성곽의 높이는 5미터라고 한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도로는 충분했을 거 같다.
본래는 동·서·남쪽에 세군데 대문이 있었고, 옹성(甕城)이 2개소, 객사(客舍) 2동, 포루(砲樓) 2동, 동헌(東軒) 1동, 총안(銃眼) 380개소 등 매우 큰 규모였다고 한다. 현재 복원된 것은 3대문과 객사 2동, 동헌 1동, 망루 1개소뿐이지만 과거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963년에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당초 충청도의 병마절도사영은 덕산에 있었는데 1416년 조선의 세 번째 임금이었던 태종이 서산․태안지방의 지형을 보고서는 해미로 옮기도록 결정했다고 한다. 이후 효종 3년(1652)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종2품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주둔하는 충청도의 군사중심지 역할을 했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 12년(1579)에 병사영의 군관(軍官)으로 이곳에서 열 달 동안 머무른 적도 있었고, 조선후기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1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를 처형했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순교성지(殉敎聖地)이기도 하다.
성이 허물어지고 여러 관공서와 민가가 들어와 있던 것을 1973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시민들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서좌영이라는 현판이 있는 문루를 열고 들어가면 동헌과 객사를 복원해 놓았다. 얼마 전에는 많은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도 눈에 익은 풍경들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다.
유채꽃밭도 있고 청보리밭도 조그맣게 조성해 놓았다. 5월 초순인데도 벌써 낮 기온은 30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쓸데없는 고집으로 발품을 많이 팔긴 했지만 돌아 나오는 마음만은 넉넉했던 해미읍성에서의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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