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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절이 흥(興)해야 나라가 흥한다는 호국 도량 - 흥국사

by 푸른가람 202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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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가지 어느 나지막한 산속에 들어앉아 있는 절인 줄 알았었다. 흥국사는 몇 해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런저런 핑계로 한참이 지나서야 찾아 나서게 됐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수많은 공장들이 들어 서 있는 여수국가산업단지를 지나 절에 들어가는 입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말로만 듣던 영취산 아래에 흥국사가 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온 산이 온통 붉은 진달래로 장관을 이룬다는 영취산이 바로 이곳이었다니. 때마침 이날 영취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절 입구에서부터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고, 일주문 앞에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어서 기대했던 산사의 고요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시간이 좀 일러서인지 다행히 찾는 이가 많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활짝 피어난 봄꽃을 찾아다니며 봄을 만끽한다지만 나는 이맘때 연녹색으로 돋아나는 싱그러운 이파리에서 봄날의 생기를 느끼고 감동 받는다. 긴 겨울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가 봄이 오면 때를 놓치지 않고 생명의 경이(驚異)로움을 일깨워주는 자연이야말로 세상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흥국사의 중심법당인 대웅전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영취산 봉우리를 배경 삼아 우뚝 서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짜리 다포식 팔작지붕집이다. 기둥이 높고 축대의 높이도 상당해 절 마당에서 바라보면 무척 웅장한 느낌을 준다.

흥국사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다. 빛이 좋지 않아 산사의 풍경을 제대로 담을 수 없음이 아쉬웠지만 푸른 하늘 아래 싱그러운 봄기운으로 한껏 물이 오르고 있는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절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늦은 오후쯤이 좋을 것 같다.

전남 여수시 중흥동 영취산에 있는 흥국사는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다. 가까이에 있는 순천 선암사 소속이 아니라 한참 떨어진 구례의 사찰에 속해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는 승병이 훈련장소로 쓰이다가 불에 탔던 것을 1624년에 중창하였다. 예로부터 “나라가 흥하면 이 절이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한다. 나라가 잘 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흥국사가 흥성하길 기원해야 할 일이다.

절의 배치는 본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사천왕문과 봉황루, 법왕문을 지나면 대웅전이 나오고, 대웅전 위에는 팔상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 높지 않은 경사지에 일직선으로 배치되고 있는 다소 단순한 구조이고, 대웅전 좌우로 적묵당과 심검당을 거느리고 있다.

중심불전인 대웅전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영취산 봉우리를 배경 삼아 우뚝 서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짜리 다포식(多包式) 팔작지붕집인데 기둥이 높고 축대의 높이도 상당해 마당에서 바라보면 무척 웅장(雄壯)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축대 계단의 소맷돌에는 용, 거북, 게 등의 모양을 새겨 놓았다. 불교의 법화신앙에서는 대웅전을 지혜를 실어나르는 배인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비유한다. 대웅전을 배로 본다면 아래의 축대는 바다에 해당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축대 계단에 바다에 사는 동물들을 조각해 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석등은 천진난만한 표정의 거북이 위에 올려 놓았다. 거북이 석등은 다른 절에서는 유래를 찾기 힘들다고 하니 흥국사를 가면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괘불지주(掛佛支柱)와 석등(石燈)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괘불지주의 측면에는 화려한 용 조각이 있고, 석등은 천진난만한 표정의 거북이 위에 올려져 있다. 거북이 석등은 다른 절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하니 유심히 살펴보면 좋겠다. 흥미로운 볼거리를 많이 가진 흥국사 대웅전은 보물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영역에서 왼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원통전도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보통 관음전으로 불린다. 원통(圓通)이라는 뜻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자비가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이 건물은 독특한 외관이 무척 인상적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가운데 3칸의 방을 사방으로 회랑식(回廊式) 툇간이 둘러싸고 있다. 법당에 모신 관세음보살을 탑돌이 하듯 돌며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다. 앞쪽에는 따로 정면 3칸 건물이 덧붙어 丁자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 후벽에는 관세음보살 벽화가, 괘불탱화도 관세음보살인데다 원통전이라는 전각까지 따로 만든 것을 보면 흥국사가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게 발원(發願)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절을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홍교를 만났다. 영취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 사이의 계곡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한데 모여 흐르는 계곡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홍교)가 걸려있다. 이 다리는 절의 중창 시기인 인조 17년(1639)에 놓였다고 한다. 반듯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서로 맞물리게 하여 홍예(虹蜺)를 이룬 뒤 홍예와 계곡 가장자리의 공간에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자연스럽게 쌓는 방식이다. 

흥국사 홍교는 선암사 승선교와 많이 닮았다. 길이가 40미터에 높이는 5.5미터로 현존하는 무지개다리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홍수로 다리 일부가 훼손된 것을 복원하면서 본래의 자연스러운 곡선미가 많이 흐트러진 것이 아쉽다는 평가다.

아쉬운 것은 홍수로 다리 일부가 훼손된 것을 복원하면서 본래의 자연스러운 곡선미가 많이 흐트러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반적인 무지개다리처럼 다리 중간 부분에 다리 바깥으로 가로지른 머릿돌이 튀어나와 있는데, 머릿돌 끝마다 용머리가 새겨져 있다. 홍예 아래 천장에도 이무기돌이 매달려 계곡의 물을 굽어보고 있다.

흥국사 홍교(보물 제563호)는 그 유명한 선암사 승선교와 많이 닮았다. 길이 40m 높이 5.5m 폭 11.3m 내벽 폭 3.45m로 현존하는 무지개다리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데 승선교처럼 아담하고 정겨운 느낌은 훨씬 덜하다.

흥국사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는 동안 많은 승병(僧兵)들이 왜적과 싸웠던 호국불교(護國佛敎)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절 이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 따라 울리는 풍경 소리와 절을 오르내리는 숲길의 푸른 정취(情趣)가 오랫동안 남아 있는 흥국사와의 짧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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