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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흔적 하나 없네 - 송광사

by 푸른가람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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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건너편엔 선암사 말고도 또 하나의 큰 절이 자리 잡고 있다. 조계산이 명산은 명산인가 보다. 순천 분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진 두 개의 절을 지척(咫尺)에 두고 언제든 찾아갈 수 있으니까. 깊은 산 속의 깊은 절, 선암사를 뒤로하고 승보사찰 송광사를 찾았다. 송광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부터 조선시대 초기 고봉국사에 이르기까지 열여섯 분의 국사(國師)를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름난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송광사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에는 신라 말기에 혜린 스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松廣)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이라 하였다 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정혜사를 이곳으로 옮겨 수선사라 부르고 대찰로 중건하였다. 산 이름도 조계종의 중흥도량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으로 고쳐 지금도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흔히들 송광사를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부른다. 보조국사의 뒤를 이어 180년 동안 무려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히게 됐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양산 통도사를 불보사찰,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가야산 해인사를 법보사찰, 그리고 이곳 송광사를 승보사찰이라 해 우리나라의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한다.

삼보사찰이란 명성에 걸맞게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 많다. 스님의 수행이 우선인 것은 당연하지만, 왠지 ‘닫힌 사찰’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아쉽다. 빗장을 풀고 문을 열어 금단(禁斷)의 구역으로 들어가면 저절로 모든 번뇌(煩惱)가 사라질 것 같은 어리석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삼청교와 한몸처럼 선 우화각이 멀리 보인다. 피안으로 건너가는 아름다운 진입 공간으로 송광사가 자랑하는 풍경이다. 우화각은 사람들이 편히 다니라고 삼청교 위에 세웠다. 들어가는 쪽은 팔작지붕인데 나가는 쪽은 맞배지붕을 올렸다.

비록 가고 싶은 곳을 들어가 볼 수 없는 답답함은 있지만 송광사는 삼청교와 우화각을 계곡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송광사에 이르는 시원스런 계곡과 아름다운 숲길도 더할 나위 없다. 산길이 좀 험하다고 하지만 송광사와 선암사를 잇는 등산로가 있다고 하니 여유가 된다면 천천히 두 고찰(古刹)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三寶)야 불교 신자들에게야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만 내가 송광사를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사찰의 하나로 마음에 두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근처의 선암사가 승선교에서 바라보는 강선루의 풍경, 일주문에 이르는 푸른 숲길, 선암매 등 멋진 풍광과 볼거리를 자랑한다면 송광사도 이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바로 이곳, 삼청교와 우화각이 제일경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삼청교는 숲길을 걸어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능허교로 불리기도 한다. 먼저 네모난 돌로 무지개 모양을 만든 다음 양 옆에 다듬은 돌을 쌓아올려 무게를 지탱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무지개다리 가운데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나와 있다. 허투루 보아 넘겼던 것들이 자세히 보면 하나둘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우화각은 사람들이 편히 다니라고 삼청교 위에 세웠다. 재미난 것은 하나의 누각에 서로 다른 지붕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들어가는 쪽은 팔작지붕인데 나가는 쪽은 맞배지붕을 올렸다. 나가는 쪽 지붕이 옆 건물과 맞닿아 있어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삼청교와 우화각은 불국토(佛國土)로 향하는 선승(禪僧)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하루하루 가을이 깊어가는 송광사는 한여름의 풍경과 또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더욱 깊어지고 한층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우화각 아래 한가롭게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송광사 경내를 느린 걸음으로 소요(逍遙)하는 사람들에게서도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시간과 상념(想念)의 흐름이 일순 멈춘 듯 몸과 마음이 자유롭다.

일주문 왼쪽으로 계곡을 건널 수 있게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돌다리를 건너다 고개를 들면 환상적인 풍경과 마주한다. 잔잔한 물 위에 삼청교와 우화각의 그림자가 달처럼 떠 있다. 붉게 타올랐던 이파리는 절정의 순간에서 물 위로 떨어져 구름이 된다. 수면의 화폭 위에 풍경이 구름에 달 가듯 그림으로 펼쳐진다.

여러 사찰들을 다녔지만 송광사처럼 독특한 느낌을 주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절들이 계곡을 끼고 있지만 송광사는 특별하다. 마치 물로 둘러싸인 중세 유럽 성곽(城廓)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송광사를 가게 되면 언제나 우화각 근처에서 한참을 머물게 된다. 가을이라 침계루 앞을 흐르는 계곡의 물이 많이 줄었다. 미처 보지 못했던 침계루 벽체의 꽃무늬도 무척 인상적이다. 

절에 이르는 숲길도 무척 아름답다. 청량각을 지나면 계곡을 따라 풍성한 숲길이 반겨준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속세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한다. 시원스러운 계곡은 숲의 푸른 빛을 담아 더욱 깊다. 하늘 향해 곧게 뻗어있는 편백나무숲이 청명함을 더해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길만 걸어도 송광사를 절반쯤은 즐긴 셈이다. 

빼어난 풍경에다 눈여겨 볼 문화재도 많다. 송광사는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국보 제56호 국사전을 비롯해 국보가 세 점, 보물이 열두 점에 이르고 그 밖의 문화재도 차고 넘친다. 풍경은 풍경대로 아름답고, 절집은 절집대로 빼어나다. 그래서인지 매번 송광사를 찾을 때마다 시간에 쫓기게 된다. 

송광사에 가을이 깊이 내려앉았다. 단풍나무의 붉은빛은 절정을 향해 내달리고 가을 하늘의 푸른빛은 눈이 시릴 지경이다. 우화각에서 바라본 개울은 바람 한점 없이 명경(明鏡)처럼 맑아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즐겨야 할 풍경도, 살펴보아야 할 문화재도 많다.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여유롭게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게 쉽지가 않다. 다음에 송광사를 찾을 때는 조계산을 두 발로 넘나들며 선암사와 송광사를 고스란히 담고 돌아오고 싶다. 무소유길을 걸어 불일암에도 잠깐 들러서 법정 스님의 흔적을 살짝 느껴보고 와도 좋겠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요 내게 필요 없는 것을 애써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하셨다.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月穿潭底水無痕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법정 스님이 즐겨 읊조리시던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도천(冶父道川)의 시를 나지막이 읊어본다. 대나무 그림자처럼 무엇에 집착하지 말고 달빛처럼 연연하지 말고 살라는 가르침이다. 섬돌을 가지려 하지 않는 대나무 그림자나 연못에 흔적을 새기려 하지 않는 달빛을 따르고 싶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탓에 괴로움이 늘 뒤따른다.

법정 스님은 입적(入寂)하시면서 절판(絶版)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스님의 이름으로 펴낸 책들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당부셨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로 스님의 이름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스님에 대한 당연한 추모(追慕)의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일관된 무소유(無所有)의 삶 속에 담겨있던 고귀한 가르침이 오히려 훼손(毁損)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세속에 발붙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오롯이 스님의 길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또 모든 사람이 탈속(脫俗)의 삶을 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버려야만 걸림 없는 자유(自由)를 얻을 수 있고, 베푼 것만이 진정 내 것이 된다는 말씀처럼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나눔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 큰 행복을 찾아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아름답고 맑은 향기를 가진 꽃을 한 송이씩 피워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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