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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마음 씻고 마음 여는 절 - 개심사

by 푸른가람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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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開心寺). 마음을 여는 절이라고 하면 될까. 참 멋진 이름을 가진 절이다. 직접 가보면 이름만 좋은 게 아니라 그 이름에 어울리는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지닌 절이란 걸 알게 된다. 모처럼 ‘산사’라는 이미지에 걸맞는 아담하고 조용한 절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사십 여년을 살아왔던 경상도 땅의 산과 들에서 느껴지는 감흥(感興)과 전라도나 충청도의 그것은 분명 다르다. 확연히 다른 느낌을 누구라도 초행길에서 생생히 맛볼 수 있다. 경상도 내륙 지형에서 기개가 느껴지는 대신, 뭔가 고집스럽고 우악스러운 느낌도 있는 반면, 충청도 서산 땅에서는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져 좋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갈 때마다 그 따뜻한 느낌에 마음을 온통 빼앗기곤 한다. 좀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늘 각박한 생활이 간절한 소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애틋한 그리움을 제대로 풀어 보려면 나이 들어서는 자연을 벗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어느덧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아랫배가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닐 때마다 왜 좀 더 젊은 시절에 떠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절로 일어난다. 하지만 소용없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 두려움을 떨치고 무작정 떠나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기 보다는 더 늦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오히려 고마워하는 편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청도 운문사, 영주 부석사와 더불어 서산 개심사를 가장 아름다운 절집으로 꼽았다. 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큰 기대 없이 개심사를 찾았던 몇 해 전 어느 봄날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록 규모가 크진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절다운 절이 바로 개심사가 아닐까.

다포 양식의 개심사 대웅전은 조선 성종 때인 1484년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현재도 그 당시의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어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주심포 양식 건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대비되는 건축물이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개심사는 예산에 있는 수덕사의 말사인데, 기록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영주 부석사나 안동 봉정사처럼 누각 아래를 통과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각을 끼고 돌아서 절의 영역에 들어서는 백제계 사찰의 특징을 볼 수 있다. 규모는 작지만 충남 4대 사찰이란 명성에 걸맞게 평일이었는데도 차량과 사람들로 붐볐다.

입구의 상가를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세심동(洗心洞)이라 새겨져 있는 돌에 눈길이 먼저 간다. 마음을 씻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마음을 씻는 마을에 자리 잡은 마음을 여는 절이라니 차원 높은 철학적 성찰(省察)이 필요한 곳임은 분명해 보인다.

보통의 절처럼 평탄한 길을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익숙한 당우들이 나오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가지런히 다듬어진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 한숨 돌리고 나서야 절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상왕산의 너른 품 안에 자리 잡은 산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걸음을 뗄 때마다 닫혀있던 마음 속 묵은 먼지를 털어내 본다.

절에 들어서자마자 직사각형 형태의 작은 연못을 만나게 된다. 네모난 정방형의 연못은 백제계 연못의 정형인데, 개심사가 들어서 있는 자리인 상왕산이 코끼리 형상이라서 부처님을 상징하는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 둔 것이란 이야기가 전한다. 이 연못의 이름은 경지(鏡池)로, 연못에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고 더럽혀진 마음을 닦으라는 의미다. 

물 위에는 바람에 흩날리던 무수한 꽃잎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람들이 마음을 비추고 마음을 닦은 흔적이 꽃잎으로 남은 것은 아닐까. 가로로 걸친 좁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바로 개심사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범종각과 안양루, 해탈문 등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살짝 열려 있는 안양루 문을 통해 대웅전을 바라보는 느낌이 나름 괜찮았다.

나무 덩굴이 자연스레 자라는 해탈문(解脫門)이 인상적이다. 곧은 나무가 아니라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생긴 그대로 사용한 자연스러움이 좋다. 군데군데 칠도 벗겨져 낡고 늙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해탈문 옆에 왕벚나무의 벚꽃들이 만개했다. 이 개심사의 왕벚나무들은 전국에서 가장 늦은 시기에 개화한다고 한다. 5월이면 보통 봄꽃이 다 지고 없을 시기인데 기대치 않았던 곳에서 막바지 꽃놀이를 만끽할 수 있어 눈이 아주 호강을 한 셈이다.

개심사의 왕벚나무들은 가장 늦은 시기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경내 구석구석에 화려하게 피어난 왕벚꽃은 절집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해준다. 너무 빨리 져버린 봄꽃이 아쉽다면 개심사에서 조금 늦은 꽃놀이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이 단아한 모습으로 중심을 지키고 있다. 여느 사찰보다는 조금 소박한 규모이긴 하지만 위엄(威嚴)이 느껴진다. 경내에도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 절집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고 있다. 심검당과 명부전 앞쪽에 가면 가장 화려한 꽃잔치를 즐길 수 있다. 흔히 보아오던 벚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화려함은 덜 할지 몰라도 은은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듯하다.

고요하고 엄숙해야 할 수도의 공간이 이토록 화려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꽃놀이 하러 절에 가는 사람들을 구도자(求道者)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하긴, 이곳은 마음을 여는 절이니 편견(偏見)과 아집(我執)에 사로잡혀 꽁꽁 닫힌 마음을 열어보는 노력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이 절의 요사채로 쓰이는 심검당은 개심사를 찾는 이들이 가장 아끼는 곳이기도 하다. 해탈문을 지나자마다 대웅전의 왼쪽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데, 휘어지고 뒤틀린 나무를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아니하고 건물의 기둥과 부재로 사용함으로써 조선 건축의 특성인 자연미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물론, 혹자는 이를 ‘대충주의 미학’이라고 폄훼(貶毁)하기도 한다지만, 못나고 모자란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이처럼 중히 쓰일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심검당 앞을 한참 서 있다 내려왔다. 지혜(智慧)의 칼을 찾는다는 뜻의 심검(尋劍)은 자비로운 절집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자신을 향해 더욱 엄정한 칼날을 겨누어야 하는 수도자(修道者)의 마음가짐으로 이해해 보려 한다. 비단 스님들에게만 해당되는 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로 세상살이에 무뎌져 가는 마음을 겨누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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