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힐 만큼 무더운 날이었다. 무슨 배짱으로 하회마을에 가 볼 생각을 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예전부터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찾는 이들이 확연히 늘었다.
매표소부터 하회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고, 낙동강을 따라 난 숲길을 따라 탐방로도 마련되어 있다.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 낙동강의 풍광을 즐기며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길을 걷다보면 시끄러운 인간 세상과는 상관없는 듯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 너머 부용대가 저만치에서 우릴 반겨준다.
하회마을과 낙동강을 마주하고 서 있는 절벽이 부용대다. 강가에서 바라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올라보면 아찔한 낭떠러지다. 높이가 80미터에 이르는 부용대에서는 하회마을과 낙동강의 물굽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선유줄불놀이가 행해졌다. 부용대에서 맞은편 만송정까지 다섯 가닥의 줄을 연결하고 심지에 불을 붙인 숯 봉지를 부용대쪽으로 끌어올린다. 지금도 한여름 밤이면 멋진 볼거리를 선사한다.
몇 해 전 여름에 하회마을에서 하룻밤 머물 기회가 있었다. 해가 저무는 강가에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내 한낮의 소란스럽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물결이 찰랑거리며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하회(河回)는 물이 돌아나간다는 뜻이다. 낙동강의 물줄기가 S자 형태로 돌아나가며, 낙동강과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하회마을은 하회 류씨 집안의 발상지로 지금도 그 자손들이 머물러 살고 있다.
하회마을에 가면 만송정이라는 솔숲에도 한번 가보는 게 좋다.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류운룡이 직접 조성했다고 하는데 한여름에도 이 솔숲에 들어가면 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만송정의 경치 또한 일품이다.
강둑 벤치에 사이좋게 앉아 땀을 식히고 있는 여행객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인다. 같은 자리에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은 마음속에 각자 행복한 추억을 담아갈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은 역시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더 즐거울 수 있다. 누군가는 하회마을은 낮에 가지 말라고 했다지만 한낮이면 어떻고 한밤중이면 어떨까. 한여름 추위도, 동지 섣달 매서운 추위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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