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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에 영원히 머물다 - 두모악 갤러리

by 푸른가람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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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라는 섬을 사랑해 20년 가까이 오로지 제주도의 중산간 들녘을 사진에 담는 작업에만 전념했다.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는 남제주군 성산읍 남달리의 폐교를 임대해 2년 여 간의 작업 끝에 국제적 수준의 아트 갤러리를 꾸며낸 사람. 이것이 사진작가 김영갑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제 김영갑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의 병든 육신은 지난 2005년 5월 29일, 끈질긴 투병 생활에 접어든 지 6년 만에 기나긴 안식에 들어갔다. 그가 손수 만들었던 두모악 갤러리에 그의 뼈가 뿌려져 그의 육신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그가 사랑했던 ‘그 섬’ 제주에 영원히 살아 있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하다 고요와 평화의 섬에 매혹되어 1985년부터는 정착해 살았다. 두모악 갤러리는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이제 두모악 갤러리는 제주의 명소가 되었다. 굳이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들러보는 필수 코스가 된 셈이다. 언젠가 제주를 찾게 된다면 사진작가 김영갑의 흔적이 남아 있을 이곳에 다시 다녀오고 싶다.

나에게도 제주라는 섬은 동경을 불러오는 존재다. 겨우 서너 번 제주도를 찾았던 것이 전부지만 나를 사진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만들었던 강렬한 끌림을 주었던 곳도 제주였고, 나를 향해 끊임없이 손짓하고 있는 곳 역시 제주라는 섬이다. 하지만 김영갑이라는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섬을 사랑할 자신은 솔직히 없다.

1982년 처음 제주도를 찾은 이후 그는 1985년에는 마침내 섬에 정착했다. 이후 스무 해 동안 한라산과 마라도, 중산간과 바닷가, 제주도의 구석구석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채웠다는 그의 수행과도 같은 사진에 대한 열정을 따를 자신도 없다. 나에게 사진은 그저 취미일 뿐이니까.

제주도가 좋아 고향을 떠나 제주도 중산간 외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혼자 살았다. 살아생전 그의 삶은 가난했고, 일상은 외로웠으며, 말년은 혹독한 병마와 싸워야 했다. 세속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그는 참 불쌍하게 이 세상에 짧게 머물다 간 것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참으로 행복한 사나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는 카메라를 매고 있는 돌하루방이 바위에 앉아 있는 모양을 한 조각이 놓여 있는데 생전의 김영갑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죽어서도 카메라를 매고 여전히 제주도의 중산간 어느 곳을 거닐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3년을 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도 결코 그는 멈추지 않았다.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그는 버려진 폐교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진 갤러리로 만들어 놓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삶을 포기한 폐인처럼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의 열정을 닮고 싶다. 그가 사진에, 제주라는 섬에 일생을 바쳤듯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면 좋겠다.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는 제주 시인 김순이의 시 구절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언가에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삶은 진정 아름답고 행복한 것일 테니.

죽어서도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많다. 그리 화려하거나 웅장하진 않지만 제주도의 참 모습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두모악 갤러리에 들러 그를 추억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의 몸은 살아 있지 않지만, 그의 영혼은 지금도 바람이 되어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들을 자유로이 소요하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해 본다.

이제는 옛 풍경이 되어버린 제주도가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이면 난 또 이곳을 찾아오리라. 언젠가, 다시 무언가를 꿈꾸고 있는 내게 김영갑 작가가 말없이 길을 내어주고 있는 듯 했다. 이리로, 제주도의 오름으로 불어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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