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의 이름을 두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다. 새재를 뜻 그대로 한자로 풀이하면 조령(鳥嶺)이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어가는 고갯마루니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한 고개라는 얘기일 것이다. 혹은 새로 만들어진 재라 해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의 사이에 있어 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나, 하나의 별칭일 뿐 타당하진 않을 것 같다.
문경새재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에 있다. 이 재는 예로부터 영남과 수도권을 잇는 군사, 행정, 문화, 경제적 요충지(要衝地)였다. 조선시대 한양에 과거를 보러 올라가는 영남유생이 필히 거쳐 가야 할 영남대로의 관문(關門)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신립 장군이 군사상 요충지인 문경새재 대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도 왜군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가 전해져 오기도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고 한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여 모진 전란(戰亂)을 겪고 난 뒤에서야 국방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는 값비싼 교훈을 얻기도 하는 법이다. 지금도 새재에서 주흘산에 오르는 길에 1관문에서 3관문까지 3개의 관문을 만날 수 있다.
주흘관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으로 불리는데 남쪽에서 올라오는 적을 막기 위해 숙종 때 설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면 3칸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다. 문 좌우의 석성은 높이가 4.5미터 폭 3.56미터 길이가 188미터에 달하며, 새재에 있는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몇 해 전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때는 성책, 무기 등이 널려 있어 옛 성곽의 느낌을 더해 주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그저 잘 정리된 모습뿐이라 아쉽기도 하다.
요즘은 이런저런 ‘길’들이 인기를 끈다. 지리산 둘레길이며 제주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전국에 수많은 길들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옛길 등이 정비(整備)되고 있다. 조금은 느리게 걸으면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 길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문경새재 과거길도 걷기에 좋은 길이다. 제3관문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기에도 적당하다. 숲길도 좋지만 주변에 옛길 박물관이며 드라마세트장, 자연생태공원 등 볼거리가 지천에 널렸다.
특히, 2007년 10월에 문을 연 자연생태공원은 자연생태전시관, 습지공원, 야생화 단지 등 일반인들이 자연과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다. 여름이면 습지를 따라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생태공원에는 타조, 사슴, 원숭이 등의 동물과 공작, 금계, 원앙 등 많은 새들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집 근처에 이런 공원이 하나쯤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경새재를 찾았던 것은 여러 번이지만 몇 해 전 여름날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맑은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더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파래졌던, 이 길을 달려 땅끝까지 가고 싶었던 무모한 욕심이 솟구쳤던 그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바위 위에 한참을 누워 있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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