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서야 이곳에 왔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곳이다. 임하호를 따라 굽이굽이 좁은 산길을 돌고 돌아 지례예술촌 앞마당에 당도했다. 이정표를 따라오긴 왔지만, 이 깊은 산중에 있는 게 맞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깊숙이 숨어 있었다.
사방에 꽃이 피어나 따뜻한 봄날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지례예술촌의 첫인상은 따뜻함과 여유로움이라 얘기할 수 있겠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잠시 생각해 봤다. 이곳에는 모두 열네 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어 일반인들에게 고택체험(故宅體驗)을 제공하고 있다.
군데군데 공사가 한창이라 조금 어수선하긴 했지만 아직은 손님이 찾지 않는 토요일 낮이라 이따금씩 중장비 소음만이 고택의 고요함을 깨운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오르면 행랑채가 나온다. 예전 같으면 하인들이 머물던 문간방이라 괄시받았겠지만 바로 앞에 임하호가 바라보이는 위치라 인기가 많다고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두고 정면에 지촌종택이, 오른편으로는 별당이 보인다. 고풍스러움이 넘쳐흐른다. 별당 옆으로 나 있는 작은 문 안에는 지산서당이 있는데 우리나라 서당 가운데 가장 크고, 금강송(金剛松)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산서당 옆으로 지례예술촌을 휘감아 돌고 있는 담장의 모습이 무척 소박하다.
지례예술촌은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 김방걸의 자손들이 340년간 집성촌을 이루어 온 곳이다. 워낙에 첩첩산중에 있다 보니 1975년에야 비로소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버스가 다녔다고 한다.
임하댐 건설로 인해 수몰(水沒)될 위기에 처하자 1989년까지 4년 동안 마을 뒷산 중턱에 새로 옮겨지었다고 하니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고택이 사라지지 않은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 느꼈던 그 따뜻하고 좋은 느낌이 여전하다. 새벽 일찍 깨어나 임하호의 깊고 푸른 안개 속에 잠겨있는 지례예술촌을 여유롭게 걷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이곳을 떠나기가 싫어진다.
다시 이곳을 찾아와야지.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이곳에는 좋은 책 몇 권 들고 오면 족하겠다. 적당하게 취기가 오를 수 있는 맥주 몇 캔은 덤이다.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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