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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보물들로 가득 찬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 - 금산사

by 푸른가람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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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아들에 의해 유폐되었던 절로 많이 알려져 있다. 보통의 사찰에서 보기 힘든 3층짜리 건물인 미륵전이 인상적이어서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절이기도 했다. 대구서 김제까지도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어서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은 가봐야지 하고 맘만 먹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때는 단풍철이다. 동네 뒷산에도 울긋불긋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가을 산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사람들이 몰리는 판에 이름난 산과 사찰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락객들을 피해 일찍부터 움직여 봤다. 다행히도 조금 이른 시각의 금산사는 예상보다 고요했다.

대부분의 사찰 입구가 그렇듯 금산사 들어가는 길도 참 아담하니 예쁘다. 이곳 금산사도 모악산 도립공원 안에 들어가 있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아쉬운 것은 역시 도립공원이다 보니 입구에 큰 규모의 주차장이 있는데다 마침 인근에서 큰 규모의 체육행사까지 열려 조용한 산사의 모습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금산사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었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용화전, 산호전, 장륙전이라고도 한다. 건물 내부는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며 전체적으로 규모가 웅대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금산사는 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일 정도로 대사찰이다. 유구한 역사에 있어서나 규모에 있어서도 여느 사찰에 뒤지지 않지만 과거의 화려했던 전성기에 비한다면 지금이 많이 쇠락(衰落)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수많은 전란을 겪으며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며 과거의 영화(榮華)를 회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웅전 앞에서 사찰 마당을 보고 있노라면 지나치게 넓어 휑하니 느껴질 정도다.

금산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후백제의 견훤이 창건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늘 주변에서 흔히 보았던 신라계 사찰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백제계 사찰을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백제계, 신라계라 나누지만, 대부분이 조선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건물일 테니 건축형태에선 큰 차이가 없겠지만 뭔가 둘을 구분 짓게 하는 독특한 느낌은 존재하는 것 같다.

견훤은 후백제(後百濟)를 건국하면서 스스로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라 칭하며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자 하였지만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 끝내는 맏아들 신검 등 세 아들들에 의해 미륵신앙의 요람인 이곳에 유폐(幽閉)되고 말았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지금도 홍예문 위로 돌문이 반쯤 남아 있는데 이것이 견훤석성(甄萱石城)의 흔적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 금산사에 대한 대대적인 중창(重創)이 있었다. 당시 신라 불교의 주류였던 법상종(法相宗)의 중심 사찰 역할을 했는데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종파다 보니 금산사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대웅전 대신 미륵불(彌勒佛)을 모신 미륵전이 주불전이다.

금산사는 수많은 보물들로 가득 찬 곳이다. 무엇보다도 미륵전(彌勒殿)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찰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미륵전은 국보 제62호로도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3층짜리 불전이다. 이 같은 다층 불전은 전라도와 충청도 등 옛 백제 땅에만 남아 있어 백제계 건축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당초 8세기 때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현재 건물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인조 때 재건한 것이며 이후 몇 차례 더 중수(重修)한 것이라고 한다.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은 금산사 소속의 봉천원에 있던 것을 현재 자리인 대적광전 앞으로 옮겨 놓았다.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만든 정사각형의 탑인데 비해 이 탑은 흑백의 점판암으로 만들어 이채롭다.

건물을 곁에서 보면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절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각 층에는 대자보전, 용화지회, 미륵전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모두 미륵불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들이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한 층으로 통해 있다. 내부에는 높이가 무려 11.82미터에 달하는 금동미륵존불이 있는데 건물의 규모나 불상의 규모에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원래는 진표율사가 절을 세울 때 철불로 미륵장륙상을 세웠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절이 불타면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금산사에는 이 미륵전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들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석련대(보물 제23호),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  5층석탑(보물 제25호), 방등계단(보물 제26호), 6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당간지주(보물 제28호), 석등(보물 제 828호), 대장전(보물 제827호)까지 금산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보물찾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금산사는 일대가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할 정도다.

당간지주 주변의 풍경이 참 마음에 든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당간지주가 자연에 잘 어울리며 동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왠지 모를 끌림에 당간지주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카메라에 담아본다. 웅장한 미륵전보다 이 모습이 금산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될 것 같다.

3.5미터 높이의 당간지주는 금강문에서 동북쪽으로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장방형의 지대석과 기단, 당간을 버티던 간대 등 각 구성 부분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예라고 한다. 기단부의 조각이나 두 지주의 3면에 새겨진 조각기법 등이 무척 뛰어나 현존하는 우리나라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아직 절정은 아니지만 금산사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조금 일찍 서두른 덕분에 조용하게 백제의 고찰 금산사를 잘 구경하고 나온 것 같다. 들어갈 땐 입구 주차장이 텅 비어 있더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차들이 가득하다. 어쨌든 이 계절은 누구나 어디든 떠나고 싶어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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