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

팔공산 자락에서 은빛 바다를 보다 - 은해사

by 푸른가람 2023. 3. 6.
728x90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역의 대표적 사찰이다. 교구 본사 가운데 본존불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헌덕왕은 조카인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했다. 당시 정쟁(政爭)의 피바람 속에서 숨진 원혼(冤魂)을 달래며 왕의 참회(懺悔)를 돕고, 나아가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 창건한 사찰이 은해사의 시초가 되는 해안사다. 운부암에 가는 길 부근인 해안평이 해안사 절터라고 한다.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다. 또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한다. 신라의 진표율사는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一道銀色世界 如海重重)”고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산지가람처럼 하나의 금당과 석탑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극락보전 맞은편의 보화루 좌우로 심검당과 설선당이 있고, 가운데 장방형의 큰 마당을 놓았다. 앞마당 중간에 계단으로 축대를 만들어 공간을 정방향으로 구현함으로서 극락보전이 더 웅장하게 느껴진다.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거느리고 있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산지가람처럼 하나의 금당과 석탑 형태로 배치가 되어있다. 대웅전 앞에 있던 오층석탑은 부도전으로 옮겼다. 극락보전 맞은편의 보화루 좌우로 심검당과 설선당이 있고, 가운데 장방형의 큰 마당을 놓았다. 앞마당 중간에 계단으로 축대(築臺)를 만들어 공간을 정방형(正方形)으로 구현함으로써 극락보전이 더 웅장하게 느껴진다. 

부처님의 미소처럼 편안함을 주는 곳. 이것이 은해사의 느낌이다. 풍경소리가 마음을 울리는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 그대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속세의 소리와 완전히 단절될 수 있는 온전한 형태의 독립적인 공간이 우리를 마중 나온다. 속세의 번잡함을 잠시나마 잊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해사를 찾아 온 보람이 있다 할 것이다.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소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사람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게 만들어 준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나진 못했으되, 구부러지고 못생긴 나뭇가지가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좋은 것 같다. 소나무 숲의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걷는 기분이 무척이나 상쾌하다.

이정표에 씌어 있는 사람 다니는 길, 차 다니는 길이란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사람 다니는 길이 금포정(禁捕町) 길인데 금포정은 은해사 일주문에서 보화루에 이르는 길이 2km의 소나무 숲이다. 일체의 살생(殺生)을 금했다 하여 금포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인 1714년에 이곳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 하니 역사가 어언 삼백년이 넘었다. 

단풍나무 잎이 마침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는 햇빛을 받아 녹음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싱그럽고 상쾌한 공기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넉넉한 선물이다. 작은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숲. 마치 번잡한 속세와 도량 사이의 경계처럼 서 있다. 물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함께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금포정을 따라 조금 더 걷다보면 사랑나무를 만날 수 있다. 수종(樹種)이 다른 두 나무가 접촉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 합쳐진 나무를 연리목(連理木)이라 하고, 합쳐진 가지를 연리지(連理枝)라고 한다. 이 연리지는 100년생 느티나무와 참나무가 서로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매우 희귀한 형태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한참을 머물곤 한다.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연등에 달아 놓았다. 건강, 재산, 결혼, 취직 등 다양한 바람들이 여기에 걸려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해 본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간절한 소망 하나는 무엇일까.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잠시 부처님께 빌어 본다. 연등을 달지 않았다고 부처님께서 소홀히 하진 않으시겠지. 

은해사 일주문에 들어서면 소나무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사람들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게 만들어 준다. 은해사 일주문에서 보화루에 이르는 길이 2km의 소나무숲을 금포정숲이라 부른다. 구부러지고 못난 가지가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은해사가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입구에서 보화루까지 이르는 소나무숲길의 무척 아름다우며,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둘러볼 수 있으며,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라는 게 또 하나의 이유다. 조용히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조용히 사색(思索)하기에도 좋은 절이다. 언제든 들러 팔공산 자락에서 은빛 바다를 구경하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은해사에 있는 추사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영․정조시대에 주석하던 영파성규대사와의 인연과 유배생활 중에 불교에 깊이 귀의하게 된 추사는 은해사의 여러 현판을 써주었다고 하는데, 문 위의 편액인 은해사, 불당의 대웅전, 종각의 보화루, 불광각, 노전의 일로향각 등 다섯 점이 남아 있다. 

무르익을 대로 익어 모두가 허술한듯한데 어디에서도 빈틈을 찾을 수가 없다.
둥글둥글 원만한 필획이건만 마치 철근을 구부려 놓은 듯한 힘이 있고
뭉툭뭉툭 아무렇게나 붓을 대고 뗀 것 같은데 기수의 법칙에서 벗어난 곳이 없다.
얼핏 결구에 무관심한듯하지만 필획의 태세 변화와 공간배분이 그렇게 절묘할 수가 없다.

간송 미술관의 최완수 선생이 은해사에 남긴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 대해 평한 내용이다. 보는 느낌은 이와는 다르겠지만 최고의 경지(境地)에 이른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豪奢)가 더해지니 은해사를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