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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그래서 그곳이, 그대가 그립다 - 운문사

by 푸른가람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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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곳일지라도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다. 운문사 역시 내게는 그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 중의 하나다. 청도 호거산에 있는 운문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도량으로 유명하다. 1997년에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조계종 운문승가대학이 설립되어 교육과 연구 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지금도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학 중이다. 

운문사는 좀 특별하다. 호거산에 자리 잡은 운문사는 절에 들어서는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아주 인상적인 곳이다. 물론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정갈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빼놓을 수 없기도 하다. 산사라고는 하지만 넓은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어 일정한 호흡을 유지한 채로 절을 한 바퀴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산지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이 넓은 운문사 경내가 항상 깨끗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불가의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남쪽 편에 승가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데 스님들의 수행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운문사 만세루는 대웅전과 동일한 축선에 놓인 중심영역에 있으면서도 창호 없이 사방을 열어놓아 경상도 지역의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를 보인다. 평지에 놓인 사찰이어서 호남지역의 건축 형태와 유사성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절들이 단아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에는 뭔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여느 사찰보다 닫힌 곳이 많은 탓에 신비스러운 느낌도 더해진다. 적당히 감추고 가릴 줄 아는 것, 이것은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묵언(默言)의 가르침일 지도 모르겠다.

운문사 경내에는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만세루와 대웅보전, 미륵전, 작압전, 관음전, 명부전, 금당 등 많은 전각들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중창된 것들이다. 기록에 따르면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타 없어졌고, 조선 숙종 때 중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물 제835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금당 앞 석등, 동호,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사천왕석주, 3층 석탑 등의 많은 보물이 경내에 산재해 있다. 말 그대로 절 자체가 보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또 하나 운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처진 소나무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범종각을 지나 운문사 경내에 들어서면 이 처진 소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높이가 9.4미터이고 둘레는 3.37미터로 한때는 반송(盤松)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높이 3미터 정도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밑으로 처지기 때문에 처진 소나무로 부른다.

이 소나무의 수령은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옛날에 고승 한 분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매년 봄, 가을마다 소나무가 잘 자라길 기원하며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고 있다. 이런 연유로 ‘막걸리 열두 말을 마시는 소나무’로 이름이 난 것이다. 아는 만큼 더욱 재미있는 산사 여행이 될 것이다.

여러 차례 운문사를 찾지만 매번 같은 코스로 절을 둘러보게 되는 것 같다. 막걸리 열두 말을 마신다는 처진 소나무를 지나 새로 지어진 대웅보전을 한 바퀴 휘돌아 만세루와 옛 대웅보전 앞을 서성이게 된다. 여러 채의 당우 가운데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웅장한 모습의 새 대웅보전이다. 십여 년 전에 처음 운문사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그 마땅찮음은 여전하다. 

막걸리 열두 말을 마신다는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 수령이 400년 정도라고 추정하는데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귀한 존재다. 매년 봄마다 막걸리 열두 말을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스님들이 정성을 다해 소나무를 지켜나가고 있다.

돌로 자연스럽게, 너무 위압적이지 않은 높이로 석축을 쌓아올린 오래된 사찰들의 전각에서 느껴지는 자비로움이 도통 느껴지지 않아서다. 오래된 것이 주는 형언할 수 없는 깊고 고요함이 이곳엔 없다. 독특한 형태의 기와 또한 사찰 지붕에서 흔히 볼 수 없어 이채롭다. 월출산 도갑사에 있는 2층짜리 대웅보전의 모습과도 닮았다.

예전에는 절에 가도 법당에 들어가 절하는 법이 없었다. 무언가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면 부처님에게 빌고 싶은 간절한 무언가가 없었던 탓일까.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외떨어진 전각에 모셔진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갖는다. 불전함에 소박한 정성을 넣고 절하기도 한다. 마음에 평안한 고요가 물결치는 순간이다.

얼마나 오래되고 큰 절인가, 유명하고 많은 신도들이 찾는 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절은 가급적 피하게 된다. 절을 관광 목적으로 찾는 게 아니라면 그런 절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절을 멀어지게 한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절은 절하는 곳이요, 마음에 고인 시(詩)를 홀로 읊어보는 곳이면 좋을 것 같다. 운문사는 딱 그런 절이라서 좋다.

여행을 다니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한 편이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또 그런대로 맛과 정취가 있는 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란 하늘이 여백을 채워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기왕의 여행길이 화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욕심이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고, 맘에 드는 사진 한 장 건질 기대조차 없는 날이라도 어디든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날도 있는 법이다. 무작정 일을 접고 운문사로 떠났던 어느 여름날도 그러했다. 처음 가보는 것도 아니요, 운문사에 푹 빠져 있던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갑작스런 일탈(逸脫)의 행선지가 운문사였던 것도 묘한 일이다.

인연(因緣)이라 부른다.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은 인연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수월하다. 다 그렇게 될 인연이었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었다고 말이다. 무심하게 다녔던 운문사가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오는 운문사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의 일이다.

“야___, 저 소리를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가는 방법은 없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편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짧은 한마디가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마음을 울렸다. 운문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역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92년에 운문사 인근의 한 중학교 교정에서 울려 퍼지던 브라스밴드가 대천리 마을 하늘에 장송곡 가락처럼 늘어지던 순간이 눈앞에 아스라이 그려진다.

몇 대를 이어 살아오던 집과 마을, 산과 들과 강이 이어진 익숙한 풍경들, 존재의 근원이 되어주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물에 잠기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 생각해 보니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니었다. 원래부터 이 자리에 댐이 있었던 것이려니 무심코 보아 넘겼고, 푸른 호수의 장관(壯觀)에만 시선을 빼앗겼던 무심함이 많이도 미안해졌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매년 막걸리 서너 말을 마신다는 처진 소나무 얘기로, 가을날 단풍잎이 노랗게 물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절 정도로 각인되어 있었던 운문사였지만, 이제는 운문댐 아래 잠들어 있는 그 오래전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세월을 함께 느껴보려 노력한다.

일주문에서부터 운문사에 이르는 푸른 소나무숲에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하다. 차를 타기보다는 여유롭게 거닐며 풍경을 완상하고, 운문사가 구석구석 숨겨놓은 비경들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그날의 운문사는 쉼 없이 떨어지던 빗소리로 기억된다. 금세 그칠 것 같았던 비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산사를 찾았던 무방비 상태의 나그네를 운문사에 고립시켜 버렸다. 간혹 우연처럼 만나게 되는 이런 시간이 오히려 고맙다. 잠깐 동안의 조바심은 이내 사라지고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이 나를 감싼다.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사람에 구애됨이 없이 그저 나 혼자만의 오롯이 누릴 수 있는 풍경이요, 자연의 소리요, 절대 고독의 시간이다. 마치 모든 것이 이 순간 멈춰져 버린 듯하다. 그 속에서 내가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만족감을 느낀다. 오래된 절집의 주인도 나요, 비와 바람과 구름의 주인도 나요, 그 속을 또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의 주인도 나인 듯하다.

물결이 다하는 곳까지가 바다이다
대기 속에서
그 사람의 숨결이 닿는 곳까지가
그 사람이다
아니 그 사람이 그리워하는 사람까지가
그 사람이다  - 고은, <그리움>

만세루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젊은 남녀가 눈에 들어온다. 함께 하는 시간의 단 한 순간도 놓치기 싫은 듯 연신 풍경과 그네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 따뜻한 눈빛,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들이 혼탁한 세상을 지탱해 주는 3%의 소금물인지도 모르겠다. 

잦아드는 비를 맞으며 운문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 운문사 구석구석에 자신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 속에 담겨있을 그 사람의 향기를 헤아려 본다.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고, 시선을 좇아 흔적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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