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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달마산 돌병풍을 둘러치고 다도해를 앞마당 삼은 - 미황사와 도솔암

by 푸른가람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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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를 향한 그리움에는 따로 이유가 없다. 자주 가 볼 수 없어서, 맛깔난 음식들이 많아서, 때 묻지 않은 청정함이 남아 있는 곳이라서……. 사실 이유를 대자면 또 못 댈 것도 없지만 늘 전라도를 떠올릴 때면 그저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 그래서 무작정 떠나고 싶게 만드는 큰 힘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요동친다.

나 역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전라도 땅을 찾았던 적이 있다. 이름난 유적지나 관광지를 찾아 사람들은 떠나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느끼며 가슴에 품어오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먼 길을 달려 그저 관광안내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곳만 잠깐 다녀오는 것은 허망하다. 아는 만큼 보일 것이니 좀 더 많이 볼 수 있으려면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절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불심이 충만한 신자는 아니다. 그저 고즈넉한 산사에 갔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이 좋고, 절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과 어우러지는 누각과 당우들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작정하고 주변의 이름난 고찰들을 돌아보고 있다. 

전국에 수백 수천의 절이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어딜 가볼까 선택하는 것은 늘 고민거리다. 관광객들의 발소리, 말소리로 번잡한 큰 절보다는 조용히 사색할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절들이 좋다. 그런 작은 절에는 시(詩)가 어울린다. 화려한 어휘로 포장된 것이 아닌, 마음을 비우고 온전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묵언(默言)의 시라야 한다. 시(詩)란 말[言]과 절[寺]이 합쳐진 말이다. 때마침 풍경소리가 그윽하게 울려 퍼져도 좋겠다. 

누군가 미황사를 두고 “달마산의 돌병풍을 뒤에 둘러치고, 해남과 진도 일원의 다도해를 앞마당 삼아 있다”고 표현했다. 미황사 대웅보전은 달마산으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앞마당은 넓고 막힘이 없이 열려 있어 남도 사람들의 개방적인 심성을 닮은 듯하다.

대구에서 만만찮은 거리에 있는 땅끝 해남으로 떠날 수 있게 해준 건 사진 한 장 덕분이었다.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 사찰 해남 미황사의 모습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는 대웅전과 달마산의 기암들이 절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아~ 이렇게나 아름다운 절이 있었구나. 차로 서너 시간을 달려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멋진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고생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땅끝의 바다 내음은 신선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숨 쉬던 공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수백 km의 거리만큼이나 내 마음도 내가 살던 곳에서의 기억에서 저만치 멀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생전 처음 해남에서의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짐을 꾸려 달마산 아래 미황사로 향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도로 근처 안개를 품은 작은 저수지의 풍경이 그림 같았다. 똑딱이 카메라로도, 사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마추어 사진가라도 그저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어디에라도 잠시 차를 세우고 이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고민을 하다 그대로 지나쳐 온 것이 지금도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황홀할 정도로 고요했던 아침 풍경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으니 언제라도 아름답게 미화해서 기억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미황사는 대흥사에 딸린 말사지만 남도에서 가장 유명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절이기도 하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이곳 미황사는 대웅전, 세심당, 요사채 등의 몇몇 당우만 남아 있었지만 큰 불사를 일으켜 지금은 꽤 큰 규모의 사찰로 변모했다.

누군가 미황사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달마산의 돌병풍을 뒤에 둘러치고, 해남과 진도 일원의 다도해(多島海)를 앞마당 삼아 있다고. 미황사에 도착해 주변 사방을 둘러보면 그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초행길에는 달마산의 돌병풍에 반했었다. 하지만 대웅전에 서서 저 멀리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다도해의 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도의 이 작은 사찰이 지닌 매력에 누구라도 푹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미황사에 대한 느낌을 얘기하자면 ‘돌담의 절’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군데군데 오밀조밀하게 위치하고 있는 당우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돌담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스님들께서 정진 중이라 곳곳에 말소리와 발소리를 내지 말아 달라는 묵언(默言) 안내판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내딛는 발걸음조차도 조심스러워진다.

대웅보전의 빛바랜 단청도 남도 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1754년에 마지막 단청이 칠해졌고 오랜 세월을 거치며 빛이 바래 지금은 미황사를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다. 미황사는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에 위치한 절이다.

좀 더 시원스런 풍광을 보고 싶다면 달마산 도솔암에 오르는 것이 좋다. 차 두 대가 비켜가기도 힘든 산길을 차로 오르면 도솔암 중계탑 주차장에 도착한다. 그때부터는 오직 두 다리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웅장하게 솟아오른 달마산의 돌병풍들의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눈길을 돌리면 들판과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도솔암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금강산과도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둘이 나란히 걷기도 힘든 좁은 오솔길을 걷고 있노라면 속세의 여러 번뇌가 씻기듯 사라짐을 느낀다. 절에 가지 않아도, 부처님께 절을 올리지 않더라도 절로 몸과 마음이 경건해진다. 무언(無言)의 가르침을 주는 사색(思索)의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유로운 걸음으로도 삼십 여분이면 도솔암에 당도할 수 있다. 그 길의 끝, 바위틈에 요새(要塞)처럼 자리 잡은 암자 하나가 나타난다. 바위틈 사이를 석축을 쌓아 메우고 그곳에 흙을 채워 암자를 세운 것이라 하는데 건너편 절벽에서 바라본 도솔암의 모습은 가히 선계(仙界)라 부를 만 하다. 운무(雲霧)가 짙게 드리운 날에 다시 이곳을 찾아 구름 위를 걷듯 노닐고 싶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권을 발간하면서 남도답사 일 번지로 전남 강진과 해남을 당당히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는 전북 부안을 두고 남도답사 일번지로 많은 고민을 했음을 이후에 고백했지만 내가 직접 가 봤던 느낌으로도 강진과 해남이 그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사실 해남 땅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주역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 유배지(流配地) 중 한 곳으로 이름을 남기긴 했다. 이렇듯 해남이란 고을은 수천여년 민족사의 중심에 서지 못한 변방(邊方)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금껏 자연 그대로의 멋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멋진 풍경과 어우러진 인문 여행지에 감동받고 돌아가는 길에 남도의 진한 맛까지 긴 여운(餘韻)으로 남는다면 아마도 최고의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산과 들과 강, 그리고 바다까지 품어 안고 있는 고을답게 그 풍부한 재료를 맛깔나게 담아내는 음식 솜씨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네가 또 남도 아니던가. 땅끝 해남에 왔지만 고산(孤山) 윤선도의 흔적을 찾아 떠나려던 보길도와 세연정의 풍광과는 언제쯤 마주하게 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그리움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땅끝 해남을, 이곳 미황사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다음번에 미황사를 찾을 때는 해가 서해 바다의 깊은 품으로 안겨갈 때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 따뜻한 부처님 마음 같은 미황사의 모습을 내 눈과 마음, 그리고 카메라에 온전히 담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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