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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바람이 되어, 물이 되어, 부처님의 마음이 되어 - 불영사

by 푸른가람 2023.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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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는 이름 그대로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치는 절이라는 뜻이다. 절 서쪽에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그림자가 항상 연못에 비치므로 그렇게 불리었다 한다. 부처님의 형상이 비친다는 절에 아름다운 단풍이 내려앉았다. 아름다운 불영계곡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리라.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세상사를 잠시 잊고 나를 뒤돌아보게 해주는 곳. 불영사에 올 때마다 매번 좋은 기운을 받곤 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단풍도 곱게 물들어가고 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가끔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아름다운 풍경들을 나 혼자만 누리고 있다는 것이 미안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정한 얘기들을 나누며 함께 이 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불가에서는 모든 이에게 부처님의 모습이 있다 했다. 너무 멀리서 피안(彼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부처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불영사로 발길을 이끌었던 두 가지 좋은 기억이 있다. 하나는 어느 신문에 실렸던 불영사 계곡의 가을 단풍 사진이다. 단풍은 말 그대로 온 산이 불타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를 뽐내고 있었다. 불원천리(不遠千里) 먼 길을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넘쳐날 만큼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불영사를 떠올리면 절로 단풍이 연상되곤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불영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은 보물 제1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당 앞에 심어놓은 배롱나무 두 그루에서 붉은 꽃이 피어날 대면 삼층 석탑과 함께 고즈넉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영화 <가을로>에도 불영사가 나온다. 영화 속에서 절을 맛깔나게 소개해 주시던 스님 덕분에 호감이 더 커졌을 지도 모른다. 성속(聖俗)의 구분을 벗어났기에 권위를 떨쳐버릴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넉넉한 품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속보다 더 혼탁한 일부 종교인들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으면 좋으련만.

어느 해 가을 우연찮게 불영사를 찾았을 때는 점심 공양으로 국수를 대접받은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 맛은 잘 기억나질 않지만 불가의 넉넉한 인심을 처음 느껴보았던 지라 불영사를 갈 때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져보곤 한다.

불영사는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있는데 「천축산불영사기」라는 기록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재위 다섯 해째인 65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동해로 향하던 중 계곡에 오색의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가 보니 연못 안에 아홉 마리의 용이 있었다. 스님이 도술을 써 가랑잎에 불 화(火) 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니 물이 끓어올라 용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쳤는데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후에 의상대사가 다시 불영사를 찾았을 때 한 노인이 “부처님이 돌아오시는구나”라고 했다 해서 불귀사(佛歸寺)라고도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절이 놓인 주변의 산세가 인도 천축산과 비슷하다 하여 천축산(天竺山)이라 불린다. 천축산 불영사의 유래는 이렇듯 신비롭다.

천년 고찰이란 명성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들어 불영사는 쇠락을 거듭하다 마침내 일운 스님이 1991년에 오면서 일대 전기(轉機)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을 새로 짓고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대웅보전과 후불탱화가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후 20여 년 동안 수많은 중창불사를 계속한 끝에 지금은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참선(參禪)도량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불심과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산중에 조그마한 절집으로 머물렀을 백년 전 불영사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길은 지금보다 좁았을 것이고, 허물어질 듯 위태로운 건물 몇 채만이 큰 여백을 채우고 있었으리라.

연못이 있어 불영사의 풍경은 더욱 풍성해진다. 여름이면 연못에 노랑어리연꽃이 가득 피어나 절집을 밝혀준다. 극락전 앞자리는 원추리꽃이 산중 화원에 화려한 색을 입힌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 앞마당은 붉은 배롱나무꽃의 차지다. 오래된 돌탑은 얼마나 긴 세월동안 이 아름다운 풍경을 오롯이 즐겨왔을까. 

전국의 이름난 사찰들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절이 좋은 이유는 오래된 절집이 주는 안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에 이르는 아름답고 풍성한 숲길이 주는 상쾌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가깝게는 경상도로부터 시작해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까지 웬만한 사찰들은 가 보았다. 도심에 있는 사찰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절들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시주를 받아 새로 당우를 짓고, 좁은 흙길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절을 둘러싸고 있던 숲들도 파헤쳐지고 있다.

사실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사찰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들도 물론 필요하다. 가급적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본래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겠다.

오랜 세월 그 자체로 자연(自然)이었던 것들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편해지려면 자연은 상처받기 마련이다. 자연이 상처받으면 결국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 그것도 아주 작은 일부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영사의 매력 역시 일주문을 지나 절에 이르는 호젓한 숲길이 아닐까 한다. 시원스럽고 맑은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진 불영사 숲길은 어느 때 찾아도 늘 만족스러운 웃음을 절로 짓게 만들어 준다. 쉬엄쉬엄 느린 걸음으로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불영사 앞마당에 다다를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 불영사에 이르는 호젓한 산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다정한 이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기에 더할 나위 없겠다. 아름다운 풍경마저 지겨워질 때쯤이면 이곳에 서서 늘 푸른 소나무숲과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에 번다한 마음을 내려놓는 건 어떨까.

바로 옆을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이 한여름의 무더운 공기를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불영계곡을 따라 난 널찍한 길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잡다한 마음속 번뇌를 모두 잊어버릴 만하다. 아름다운 풍광과 맑은 공기, 아래로 흐르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 이 모든 것이 자연과 불영사가 인간에게 선사하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매번 불영사를 찾아도 질리지 않는 것이 다 이것 때문인 것 같다. 늘 똑같은 모습인 듯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늘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순간은 늘 처음 대하는 모습마냥 마음이 흡족하다. 

한참 길을 걷다보면 세차게 흐르던 계곡이 숨을 고르듯 완만하게 굽이쳐 흐르는 곳을 만나게 된다. 바위에 단단히 뿌리 내린 소나무들이 햇빛을 받으러 가지를 뻗어내는 모습은 삶에의 강력한 의지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불영사에 오게 된다면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시길. 한참을 걸어오다 조금 지칠 때쯤 만나게 되는 이곳에 서서 굽이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 보시라. 맑고도 힘찬 소리에 부질없는 욕심과 까닭 모를 미움들이 사그라지지 않을까.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사는 물도 만나야 하고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면서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心性)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 도종환, <멀리 가는 물>

그저 잠시라도 좋다. 이내 불영사를 떠나면 다시 복잡미묘한 세상살이에 물들어 때가 끼고 마음의 빛이 바래도 상관없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속세를 살려면 그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어차피 삶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가끔씩은 이렇게나마 모든 걸 내려놓고 산이 되어, 바람이 되어, 물이 되어, 혹은 부처님의 마음이 되어 나를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나의 사찰 기행 역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은 좀 더 느린 것이어야 하겠다. 두 발로 걸으며 천천히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자연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전문적인 공부를 한 것은 아닌지라 수준 높은 글과 사진을 남기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간의, 그리고 앞으로의 행적(行蹟)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난다. 하지만 그마저도 헛된 욕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저 고요한 아침에 고요한 산사의 숲길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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