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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왕의 피난처에서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생태관광지로 - 왕피천계곡

by 푸른가람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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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겨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왕피천 안으로 들어선다. 왕피천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왕피천 일원의 우수한 자연 생태계와 멸종위기종 및 희귀 야생생물의 서식지 보전을 위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고시되었다. 지정범위는 경북 울진군과 영양군의 왕피천유역과 통고산, 천축산, 대령산 자락 등을 포함하는 102.84㎢(약 3천만평)의 광활한 지역으로 지금까지 지정된 보호지역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동강의 1.6배,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35배에 달한다.

왕피천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은 핵심구역 45.35㎢, 완충구역 55.64㎢, 그리고 전이구역 1.85㎢로 구분되어 있다. 환경부에서 2005년 10월에 우선 핵심구역을 보호지역으로 지정·고시하고, 이후 2006년 12월에 완충 및 전이구역를 추가했다. 왕피천 유역은 녹지자연도 8등급 이상 지역이 전체의 약 95%를 차지할 정도로 식생이 우수하고, 계곡과 하천이 어우러진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산양, 수달, 매, 삵, 담비 등 다수의 멸종위기종과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왕피천은 태백산지의 수비분지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길이는 60.95km 유역면적 513.71㎢로 비교적 작은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왕피천 발원 후 경사가 급한 동사면으로 유입하면서 하천의 양안이 하방침식(下方浸蝕)에 의하여 대칭적으로 깊은 골짜기를 이뤄 계곡이 깊고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일부 구간은 차량 접근이 불가능하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너무나 깊이 있어 쉬 찾기 어렵다. 가파른 절벽과 협곡, 세찬 물줄기와 깊은 소가 어우러져 사람들의 발길을 가로막는다. 무모하게 들어섰다 목숨을 잃은 이도 많다. 하지만 위대한 자연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선다면 언제든 넓고 깊은 품으로 안아줄 것이다.

왕피천이 지나는 곳에 왕피리가 있다. ‘왕피(王避)’라는 지명은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신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이전 삼척과 울진지역을 지배하던 실직국의 왕이 강릉지역을 지배하던 부족국가 예에 쫓겨 피난 왔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골이 깊고 길이 험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천의 길이는 짧지만 왕피천에는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버들치를 비롯하여 연어, 황어 등 어종이 풍부하며, 매년 연어 치어 방류행사가 왕피천 하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 왕피천 일대에는 다양한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왕피천유역은 불영계곡과 더불어 울창한 금강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왕피천을 찾는 방법은 다양하다. 울진군 근남면에서 성류굴 방향의 도로를 따라 하류에서 올라갈 수도 있고, 영양군 수비면에서 장수포천을 따라 상류에서 내려가거나,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리에서 박달재를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루트를 택하더라도 한꺼번에 왕피천 전체를 둘러보기는 어렵다.

왕피천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청정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향유(享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왕피천은 환경부에서 지정한 전국 열두 곳의 생태관광지역 중 하나다. 울창한 숲과 굽이쳐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어우러져 천혜(天惠)의 비경을 간직한 왕피천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일부 생태탐방로 구간에서는 주민들이 예약탐방제를 운영하고 있어 자연환경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고 식사 예약도 가능하다.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에는 다양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1코스는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해 골안교를 거쳐 한천마을에 이르고, 2코스는 굴구지마을에서 출발해 속사마을에서 마친다. 3코스는 박달재, 거북바위, 수곡삼거리를 거쳐 수곡리 까지다. 

이 중 용소를 비롯해, 학소대, 거북바위 등 왕피천 협곡(夾谷)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굴구지-속사 구간이 가장 인기다. 굴같이 생긴 아홉구비를 넘는다는 뜻을 가진 ‘굴구지’ 마을에서 협곡과 절경의 왕피천 탐사가 시작된다. 협곡 사이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 걷노라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진경이 펼쳐진다. 

봄기운이 완연한 5월 초순 왕피천의 풍경. 겨우내 잎을 떨어뜨렸던 나무에 새잎들이 돋아나 산과 계곡은 온통 푸른 신록으로 충만하다. 계곡을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트래킹에 나서면 대표적인 오지(奧地)마을이었던 상천동 가는 길이 제일 먼저 나타난다. 낭떠러지를 끼고 차 한 대가 겨우 드나들만한 좁은 길이 2km 정도 이어진다. 옛 모습의 원형이 일부 남아 있어 지난 세기까지 남아 있던 우리나라 오지마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깊은 산골에 들어와 살았던 오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상천초소를 지나 탐방로로 접어들면 마을 주민들이 다니던 옛길이 나온다. 왕피천 상류지역인 왕피리의 거야마을, 속사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시집 올 때 가마를 타고 온 길이란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지아비를 찾아, 집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험한 산길을 걸었을 할머니들의 고단했던 삶이 떠오른다. 

묵묵히 길을 걷다 보면 왕피천의 비경(秘景) 용소에 다다른다. 용소는 불영사를 지을 당시 용 아홉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이곳으로 와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실제로 어른 5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의 용바위가 있다. 양쪽으로 깊은 암벽을 끼고 왕피천이 흐른다. 과거에는 기에 눌려 사람들이 절대 다닐 수 없는 곳이었고, 굉장히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어 이곳에서 기우제도 지냈다고 한다. 이 협곡을 막으려고 했던 국토부의 속사댐 건설계획이 무산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너무나 깊이 있어 쉬 찾기 어렵다. 가파른 절벽과 협곡, 세찬 물줄기와 깊은 소가 어우러져 사람들의 발길을 가로막는다. 무모하게 들어섰다 목숨을 잃은 이도 많았다. 하지만 위대한 자연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선다면 언제든 왕피천은 그 넓고 깊은 품으로 안아 줄 것이다. 왕이 피난을 왔던 오지였던 이곳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생태체험지로 변신해 그대를 초대하고 있다. 한번 떠나봄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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