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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흥겨운 세속의 소리가 어우러진 불보사찰 - 통도사

by 푸른가람 2023.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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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8년 6월 우리나라가 신청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 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모두 일곱 곳이다. 사찰은 고유한 가르침과 가람 배치를 통해 불법(佛法)을 전파하고 있는데, 절마다 불교의 요체(要諦)인 불(佛), 법(法), 승(僧) 삼보의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삼보사찰로 대표되는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는 이러한 특징들이 특히 도드라진다.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로,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 이래 열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로 이름나 있다.

그 중에서도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삼보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불보사찰(佛寶寺刹)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통도사를 한국불교의 으뜸인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는 적멸보궁이라서 대웅전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통도사 대웅전은 실제로 부처님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여겨져 다른 사찰과 구별되는 종교적 상징성을 갖는다. 법당의 네 방향마다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씌어 있다. 내부는 금강계단 방향으로 예배를 드리게 배치하였다.

통도사 대웅전은 실제로 부처님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여겨져 다른 사찰들과 구별되는 종교적 상징성을 갖는다. 법당의 네 방향마다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이라 쓰여 있다. 내부는 금강계단 방향으로 예배를 드리게 배치가 되어있다.

연못을 메우고 건립한 통도사의 대웅전 바로 뒤에 금강계단이 위치하고 있다. 통도사 가람 배치의 중심이자 최고의 성지다. 금강이란 금강석(金剛石)을 뜻하는데 불가에서는 반야(般若)의 지혜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戒)를 받는 것은 부처님에게서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므로 오늘날까지도 유일한 정통을 잇는 수계(受戒)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영축산과 통도사라는 이름도 살펴볼 가치가 있다. 통도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대국통(大國統) 자장 스님이 창건했다. 당시 경주의 황룡사가 왕실과 귀족불교의 중심이었다면 통도사는 수행불교(修行佛敎)의 중심도량이었다. 통도사가 자리하고 있는 영축산의 원래 이름은 축서산 이었다. 산의 모양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해서 통도사라 한다.

또한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부른다. 부처님이 행하고 실천한 계율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익히고 배워야만 승려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 불교 계율의 중심지로서 모든 승려들은 이곳에서 계(戒)를 받아서 산문(山門)에 들어서라 하였다.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通萬法度衆生)는 의미의 통도(通度)는 모든 방편을 동원하여 중생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하셨던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보살(菩薩)과 수행자들의 존재 이유는 자기만의 깨달음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중생들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금강계단을 돌아 나오면 삼성각과 산령각 앞에 작은 연못과 다리가 있다. 마침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어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마치 예상치 못했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은 연못은 구룡지라고 불리는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자장 스님이 당나라 오대산에서 기도를 드리자 문수보살이 나투시어 “축서산 기슭의 신지(神池)에 사는 독룡(毒龍)들이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그곳에 금강계단을 세워 이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하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게 되리라.” 했다.

스님이 신라로 돌아와 아홉 마리의 용들을 제도(濟度)하고 못을 메워 그 위에 금강계단을 쌓았다. 눈먼 용 한마리만이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맹세하였으므로 한 귀퉁이를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니 신비롭다. 

통도사가 놓인 곳의 풍수가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국이라고 한다. 해발 1,050미터의 영축산 상봉으로부터 남쪽으로 봉우리들이 흘러내려 오다가 금강계단에 이르러 멈춰 명당(明堂)을 만들어 준다. 남향을 했으면서도 지형 탓에 절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큰 사찰답게 건물도 많은데, 법당을 중심으로 세 지역으로 나누어 상노전ㆍ중노전ㆍ하노전이라 부르고 있다. 노전(爐殿)이 3개라는 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강계단을 돌아 나오면 삼성각과 신령각 앞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작은 연못과 다리가 있다. 마침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어나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마치 예상치 못했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도사는 대웅전을 비롯한 12개의 법당을 포함하여 65동 580여 칸에 이르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대웅전은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던 것을 조선 선조와 인조 때 두 차례에 걸쳐 중수(重修)했다. 고려시대 건물인 대광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근세에 지어졌지만 빛바랜 단청들에서 오랜 세월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통도사 앞의 계곡에는 수많은 행락 인파가 몰려 성속(聖俗)의 구분이 없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템플스테이를 온 사람들, 단체로 불교체험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일주문 밖은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흥겨운 소리로 가득하다. 아이들과 어울려 물장난을 치는 스님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한 동자승의 모습을 닮았다. 자애(慈愛)롭고 다정하다.

보통의 산사들이 고요함으로 충만하다면 이곳 통도사는 사람 소리가 넘쳐난다. 절에 들어설 때는 산사에서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함을 뺏긴 것 같아 못내 아쉬웠는데 나올 때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세상 속에서 중생(衆生)과 어울리며 소통(疏通)하는 것, 이 역시도 종교의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함 속에 끊임없이 수행(修行)하고 정진(精進)하는 것과 더불어, 이렇듯 사람들에게 앞마당을 내어주고 좀 더 가깝게 다가서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겠지. 

소설가 조성기는 『통도사 가는 길』에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의 구절대로라면 부처도 없어야 마땅하다 얘기했다.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경지, 통도(通度)의 의미는 결국 모든 것이 통하는 길이 아닌, 모든 것을 헤아려 금하는 것이 없는 물금(勿禁)의 세계라는 해석이다. 마음속에 갈등을 느낄 때,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통도사의 울림을 찾아 훌쩍 떠나고 싶게 하는 글이다. 눈이 시리게 푸른 어느 가을날에 다시 통도사를 찾으려 한다. 오래된 절집 가는 길에 쉬며 걸으며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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