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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나무 사잇길’ 따라 천년고찰을 거닐다 - 석남사

by 푸른가람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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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중에 있는 작은 사찰쯤으로 생각하고 석남사를 찾았다. 첫 느낌은 조금 생소했다. 일주문 앞으로 도로가 지나고 절 입구에 있는 식당은 속세의 허기를 채워주기에는 적당할지 몰라도 절집이라면 응당 고요한 산사의 한적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는 마땅찮은 풍경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덕분에 때 이른 무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숲길이 있다. ‘나무 사잇길’로 이름 지어진 이 길은 울주군에서 예산을 들여 새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공사 과정에서의 수목 훼손 논란 등으로 한때 시끄러웠었는데 잘 해결되었는지 모르겠다.

날씨 탓인지 녹음이 더욱 무겁고 짙게 느껴진다. 한여름에 걸어도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걷기 좋은 길이다. 그래서인지 석남사 계곡은 예로부터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숲길뿐만 아니라 계곡 곳곳이 더위를 피해 온 인파로 넘쳐날 것이다.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대웅이라 하여 본존불로 모신 불당을 대웅전이라 한다. 석남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일주문에서 절에 이르는 길에는 온갖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가지를 펴고 있어 한여름에는 풍성한 터널을 이룬다. 서어나무, 굴참나무, 가막실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반가운 눈인사를 나누다 보면 700미터에 이르는 숲길이 끝나고 석남사 침계루에 닿는다.

새소리 물소리에 정신이 팔려 잠시 걷는 사이 어느새 저만치 절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 앞 계곡은 가뭄 때문인지 물이 많지가 않다. 여러 단으로 쌓아 올린 석축 너머 여러 채의 당우들이 보인다. 그 사이 특이한 모습이 눈에 띈다. 석축 사이의 큰 구멍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무가 이채롭다. 분명 나무 한그루를 살리기 위해 저런 모양으로 석축(石築)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의 생명도 소중하니 함부로 살생(殺生)하지 말라는 무언(無言)의 가르침이라 생각하니 비로소 절에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걸어올 때는 몰랐는데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주위 풍경을 보니 꽤나 깊은 산중에 절이 소박하게 들어앉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대웅전 뒷편의 대나무 숲 뒤엔 소나무 숲이 제각각 다른 느낌의 푸름을 뽐내고 있었다.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와 더불어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이름 높은 절집답게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돌담을 따라 대웅전 뒤편으로 올라가면 마치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을 만나게 된다. 신라 헌덕왕 16년(824)에 석남사를 개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도의국사의 사리탑이 이곳에 모셔져 있다. 

이 석남사 부도는 보물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집들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이곳에 서서 많은 당우들이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절이 자리 잡고 있는 울주군의 명산 가지산(迦智山)의 또 다른 이름인 석면산(石眠山) 남쪽에 있다 해서 석남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남 알프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영남 9봉(峰)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 가지산(1,240m)이다. 

우리나라 불교에 처음으로 선을 도입한 도의국사가 가지산 석남골 들머리에 절을 짓고는 가지산파의 개종조가 되었다. 석남사는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와 더불어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이름 높은 절집답게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때마침 피어난 수련으로 절 풍경이 화사한 빛으로 가득 찼다.

높기도 하지만 나머지 봉우리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을 거느린 형국을 하고 있다. 가지산은 세 개의 큰 골짜기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운문사가 자리하고 있는 운문학심이골이고, 두 번째는 구연폭포·호박소·백연사·얼음골로 이어지는 남쪽의 쇠점골, 그리고 마지막이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동쪽의 석남골이다. 

이 석남골의 들머리를 막고 있는 절집이 석남사(石南寺)다. 우리나라 불교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국사가 절을 지을만한 영산(靈山) 명지를 찾다 이곳에 터를 잡은 뒤 가지산파의 개종조(開宗祖)가 되었다.

석남사에는 도의국사가 824년에 세웠다는 삼층석탑의 흔적이 남아있다. 기록대로라면 천이백년이 넘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석남사 경내에 남아 있는 두 기의 탑에서 천년 세월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호국(護國)의 염원을 담아 원래는 15층으로 세웠는데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3년에 스리랑카의 승려가 사리 1과를 봉안하면서 3층으로 개축했다고 한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 지붕 위에 올라앉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무엇을 바라보는 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지 미동조차 없다. 미물조차 이 절에서는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것인지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때마침 피어난 수련(睡蓮)으로 절 풍경이 화사한 빛으로 가득 찼다. 자연이 빚어낸 색은 어찌도 저리 고울 수 있을까. 

나지막한 담장을 끼고 배롱나무 한그루가 홀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달 쯤 뒤면 저 풍성한 가지마다 선홍색 붉은 꽃들이 피어날 장관이 그려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고 하지만 배롱나무꽃은 백일 이상을 핀다 해서 이 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쉬 변하고 덧없는 것 투성인데 그 속에서 제 갈 길을 가고, 제 마음을 고이 지키는 것이 그래서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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