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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희고 붉은 연꽃의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산사 - 완주 송광사

by 푸른가람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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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하면 흔히들 순천 조계산에 있는 승보사찰 송광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전북 완주의 종남산 산자락 아래에도 이에 못지않은 훌륭한 사찰이 있으니 그 이름 또한 순천의 그것과 한자까지 똑같은 송광사(松廣寺)다. 송광이란 이름이 좋아 이렇듯 여러 절에서 이름으로 쓰고 있는 듯하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남서쪽으로 기세를 떨치다 마친 곳이 전라북도 완주라는 고을이다. 이곳 완주의 종남산 동남쪽 끝자리에 송광사가 자리 잡고 있다. 전해지는 바로는 종남산 남쪽에 영험(靈驗) 있는 샘물이 솟아나 그 옆에 절을 짓고 백련사라고 했다고 한다.

신라 경문왕 때 도의선사가 이 절을 창건했을 당시에는 절의 규모가 무척 커서 일주문이 사찰 경내로부터 3km 밖에 세워졌을 정도였으며 무려 800동의 당우와 600여명의 승려가 수행을 했다고 하니 능히 그 위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송광사는 아담하니 위압스럽지 않아 좋다. 처음 송광사를 찾았을 때 절 옆의 연 밭에는 연꽃이 한창이었다. 희고 붉은 형형색색의 연꽃들이 짙은 녹음으로 가득한 절 풍경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더러운 진흙에 머물러 있되,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밝혀주는 연꽃의 뜻을 우리는 얼마나 좇을 수 있을까.

종을 달아놓은 종루는 십자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십자각은 열 십자 모양을 한 2층 형태의 누각이다. 종이 걸려 있는 중앙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1칸씩 덧붙여 이르는 모양인데, 지붕 역시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유일한 열 십자형 2층 누각으로 가치가 크며 보물 제1244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종루를 만나게 된다. 이 건물은 건축학적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이목을 끈다. 원래 종루는 범종(梵鐘)·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板) 등 사찰에서 의식 때 사용하는 사물을 봉안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종루나 종각을 사각형으로 짓는 데 비해, 송광사 종루(보물 제1244호)는 2층 누각 건물로 십자형 평면 위에 팔작지붕을 교차시켜 세웠다는 점에서 독특한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건축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세기 초반 혹은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느리고 깊은 흐름으로 절 구석구석을 걸어본다. 달빛 어스름한 봄날 저녁도 좋고, 초록이 짙어 한창 단풍 든 가을날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때맞춰 깊고 무거운 종소리가 마음을 울리면 그 자리에서 한 그루 나무처럼 뿌리내린다 한들 두려울 게 있을까 싶다. 비록 다시 속세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뿐이지만 보잘 것 없는 욕심과 고집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절이 좋은 이유다.

넓은 평지에 세워진 송광사는 전형적인 백제계 사찰의 형태를 보여준다.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이 직선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세 군데 문을 지나가면 송광사의 중심 법전인 대웅전이 나타난다. 

승병장으로도 이름을 떨쳤던 벽암각성대사가 중창한 보은 법주사, 구례 화엄사, 하동 쌍계사, 그리고 이곳 완주 송광사는 일주문-금강문-천왕문으로 정연하게 이어지는 가람 배치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전과 지장전이 자리를 잡고 있고, 대웅전 뒤편으로 나한전, 약사전, 향로전, 삼성각이 또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송광사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주불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함께 모시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를 띠고 있는데 처음 지어졌을 때는 2층 전각이었으나 중수되는 과정에서 단층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판의 글씨는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의 작품으로 단정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구례 화엄사 대웅전의 현판도 그가 쓴 것이라 하니 두 절을 찾아 비교하며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절에 들어서는 문들도 하나같이 아름답다. 절의 경계에 세워 속세와 사찰의 경계를 나타내는 일주문(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은 원래 지금 자리에서 3km 밖에 있었다. 절의 사세(寺勢)가 약해지며 점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보여준다. 일주문은 두 개의 둥근 기둥 위에 맞배지붕을 올린 단순한 형태인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으로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은 일반적으로 맞배지붕 형태로 소박한데 비해 송광사의 것은 다포계 팔작지붕인 점이 특징으로 금강역사 외에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함께 모시고 있다. 

절에 들어서는 문들도 하나같이 아름답다. 절의 경계에 세워 속세와 사찰의 경계를 나타내는 일주문은 원래 지금 자리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멀리 있었다. 절의 사세가 약해지며 점점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역사를 보여준다.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면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이 나오는데 송광사에서는 천왕전으로 지어 여닫는 문을 달았다. 사찰에 들어오는 쪽으로는 천왕문을, 대웅전 쪽에는 천왕전으로 현판을 달았다. 이곳에서는 음력 매월 초하루 사천왕 법회 및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앙 공간으로서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천왕전(天王殿)이라 하고 있다.

사천왕(四天王)은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을 말한다. 사방을 수호하는 호법신인데 국가적 차원에서는 호국신앙과 연결되었고, 종교적 측면에서는 불법(佛法)과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신앙되었다.

진흙으로 조성된 소조상(塑造像)으로 크기가 425cm에 달하는 거대한 상이며 인조 27년(1649)에 만들어졌다. 사천왕의 얼굴은 모든 번뇌와 망상을 모두 잊게 할 만큼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다. 갑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다양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데 동방 지국천왕은 비파, 남방 증장천왕은 칼,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 북방 다문천왕의 손에는 당(幢)과 보탑(寶塔)이 들려 있다.

전각과 불상이 비어 있는 여백은 아름다운 꽃과 나무의 차지다. 송광사는 구석구석마다 정원이 잘 가꿔져 있어 마치 잘 꾸며진 공원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거닐 수 있어 찾을 때마다 마음이 흡족하다. 믿으면 어떻고, 믿지 않으면 또 어떤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편 가르고 배척하는 세상의 편협함을 경계해야 하는 요즘 세상이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눈썹처럼 새겨졌다. 공양간 보살님이 한 끼 들고 가라 청하는데 정해진 거처도 없는 나그네의 발길이 절로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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