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마다 느껴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있다. 전주는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진다. 도시 곳곳에 전통의 아름다움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식(韓食)의 대표 브랜드가 된 비빔밥을 포함한 먹을거리도 전주가 내세울만한 자랑이다. 하지만 역시 전주의 상징은 칠백여 채의 한옥이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한옥마을이라 할 수 있겠다.
전주 한옥마을은 우리 근대사의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이다. 한일합방 이후 전주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유입되었는데 1910년대 전주 성곽이 허물어지면서 이들이 성안으로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은 필연적으로 조선인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1930년대에 들어서 전주 중심가인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이 형성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한옥마을의 상징과 같은 곳이 바로 경기전이다. 경기전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전각으로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어 있다. 태종 11년에 전주, 경주, 평양에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전각을 세웠었는데 원래 이름은 어용전 이었다 한다.
이후 세종 때 전주이씨의 본관인 전주를 왕조의 발상지라 여겨 이곳에 세워진 전각의 이름을 경기전(慶基殿)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후 정유재란 때 불탔던 것을 광해군 때 중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면에 서면 진입을 금하는 신도(神道) 표시가 있고, 정전을 따라 조선시대 여러 왕들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 국사책에서만 보아 오던 태조 이성계, 태종, 세종, 정조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의 이름난 제왕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경기전을 찾았던 날은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였다. 게다가 며칠 전에 눈이 내려서인지 바닥이 너무 질어 걸어 다니기 쉽지 않았다. 한기(寒氣) 때문인지 사람의 체온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툇마루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따뜻한 햇살을 쬐고 계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정겨운 느낌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기대와 다른 모습에 실망이 컸었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인상적인 풍경이 있다면 바로 경기전에서 바라본 전동성당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전통의 한옥마을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이 이처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부드러운 한옥의 곡선과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직선이 대조를 이루면서도 또 한편으로 서로의 모습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전동성당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게 된 건 순전히 영화 한 편의 힘일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지역주민들에겐 충분히 자랑스러운 곳이었음에는 틀림없겠지만. <편지>라는 영화였던가 조폭 두목 박신양과 가녀린 여의사 전도연이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던 곳이 바로 전동성당이다. 일반인들에겐 영화촬영지로 알려져 있지만 천주교도들에게 이곳은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 최초의 선교자로 알려진 윤지충을 비롯한 호남지역의 많은 천주교 신자가 참수당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마음이 한결 경건해진다.
일제강점기인 1908년에 공사가 착공되어 1914년에 외관 공사가, 1931년에 비로소 성당이 완공되었다. 당연히 전주시에 있는 성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호남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뭔지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성당 문을 열고 내부에까지 들어가 보게 되었다.
절이든 성당이든 그냥 멀찍이 밖에서만 맴돌다 돌아가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곳은 좀 달랐다. 성당이란 곳을 들어가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아 오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건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너무 유명해져서일까. 종교 자체의 경건함보다는 관광지와 같은 가벼움이 느껴져 조금 아쉬웠지만 전동성당의 아름다움을 친견한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경기전을 거쳐 전동성당에 이르렀다면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이 바로 풍남문이다. 전동성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지척인 전주시 완산구 전동 2가에 위치해 있다. 풍남문은 조선시대 관찰사가 머물던 전주읍성의 남쪽 문이다. 예전에 전주 고을을 둘러싸던 4대문은 다 허물어져 지금은 남쪽 문이던 풍남문만 남아 있다.
풍남문은 원래 정유재란 중이던 선조 30년에 파괴되었던 것을 영조 10년에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어 명견루라 불렀다. 이후 영조 43년에 다시 불타 허물어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다음해에 다시 지으면서 풍남문이란 이름을 붙였다. 풍남문은 1963년 1월에 보물 제308호로 지정받아 관리되고 있는데 풍남문을 중심으로 로터리가 형성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이 성문을 자세히 보면 1층 건물 너비에 비해 2층 너비가 갑자기 좁아 보인다. 이것은 1층 안쪽에 있는 기둥을 그대로 2층까지 올려 모서리 기둥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이 같은 건축기법은 국내 성곽 건축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형태로 조선후기 건축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예전에는 전주 읍성에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문이 있었는데 모두 사라져 지금은 그저 옛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순종 때는 도시정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성곽과 성문까지 모두 허물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노릇이다. 사람도, 사물도 우리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법인가 보다.
앞서 얘기한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은 모두 전주의 랜드마크라 부를 만하다.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곳이다. 언제나 인파로 붐빈다. 젊음의 역동성이 흘러넘친다. 재미난 사람구경도 오래 하면 지치는 법. 이럴 때 차 한 잔 하며 편히 쉬기 좋은 곳이 있다. 교동다원이란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주 한복판에 있으되,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 풍경, 세상의 소리와 완벽히 단절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고향집처럼 편안하다. 다원의 방들은 마당을 향한다. 크지는 않지만 깊다. 오래된 한옥에 앉아 담백한 황차를 우려 마신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마루에 몸을 뉘어본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노곤한 낮잠에 취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유독 느리게 흐른다. 한없이 여유롭다. 머물러 있고 싶은 만큼 있다 자리를 내주면 된다. 재촉하는 이도, 오래 앉아있다 타박하는 이도 없다. 찻집의 다정함은 친절한 주인을 닮았나 보다. 교동다원의 주인장은 20년 가까이나 이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앞으로도 늘 지금처럼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은 큰 욕심일까.
차 한 잔으로 한숨 돌렸다면 오목대에도 한번 올라보자. 오목대는 경기전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언덕에 있다. 고려 우왕 때 이성계가 남원의 황산을 침범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다 자신의 고조부가 살았던 이곳에서 승전을 자축하는 잔치를 벌였는데 후에 조선왕조를 창업하고 정자를 지었다. 오동나무가 많이 오목대라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나무 계단을 쉬엄쉬엄 오르면 나지막한 언덕에 당도한다. 평평한 언덕 위에는 단아하게 잘생긴 오목대가 자신의 품을 내준다. 오목대에 서면 한옥마을의 전경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다. 오목대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배롱나무 꽃이 절경이다. 다소 번잡한 한옥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이처럼 화려한 꽃잔치를 만끽할 수도 있다. 묵직한 흑백의 중후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전주답다.
한옥마을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이름난 관광지가 가까이 모여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부담이 없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독립영화를 주로 다루며 비중 있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비빔밥, 콩나물국밥, 모주와 같은 전통음식은 물론 새롭게 개발된 메뉴들도 관광객들의 입맛을 돋운다.
볼거리 많고 먹을 것이 넘쳐나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꼭 한번 가봐야 하는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영광스런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전주는 도시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나가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한옥마을이 역주행하고 있다는 쓴 소리에도 귀기울여봄직하다. 머물러 있지 않되, 본성(本性)과 품격(品格)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도시의 화려한 풍경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감춰지고 가려진 길이 그 너머에 있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그 길이. 그래서 전주 한옥마을의 진면목을 제대로 살피려면 화려함에 홀려서는 아니 될 것 같다.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한적한 뒷골목을 외로이 걸어보자. 주목받지 못해 쓸쓸하기까지 한 변두리 동네를 기웃거려도 좋겠다.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일곱 빛깔 무지개가 선명해지는 시공(時空) 속에서 오래된 도시의 진경(眞景)을 마주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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