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단아하다. 그간 다녀본 고택들은 예스러움은 있었으되 세심한 손길이 닿은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선교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 넓은 구석구석을 누군가 매일 쓸고 닦고 한 정갈함이 느껴진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사대부 집안의 엄격한 가풍을 느끼게 하는 듯해 옷매무새를 한번 더 살펴보게 하는 곳이다.
선교장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져 10대를 지나며 지금의 모습을 갖고 되었다. 아흔아홉 칸 조선 사대부 집안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지금도 후손들이 기거하고 있고 일부 공간은 전통문화체험을 위해 일반인들에게 내어주고 있다. 300년 이상이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좋은 경험이 될 거 같다. 선교장 뒷산의 소나무들도 무척이나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과거에는 경포호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다 해서 선교장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그때의 호수는 논이 되어 그때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밖에 없다. 선교장 자리는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한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교장을 두루 돌아보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2000년에는 한국방송공사에서 ‘한국톱10’을 선정할 때 전통가옥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돌아보니 정말 그럴만하단 생각이 든다. 선교장은 이 집에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드는 곳이다. 한편 이런 집을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오래 머무를 곳은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 연못가에 활래정이 있다. 정자에 앉아 만개한 연꽃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상을 해 본다. 아주 환상적이지 않을까. 연못에 배 한 척 띄워 연꽃 사이를 떠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그리 길지 않은 동안의 선교장 체험이었지만 그 여운이 한참 남아 있을 거 같다. 가까이에 있다면 늘 내 집처럼 들락거리고 싶은 곳이다. 300년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선교장의 매력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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