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野球·Baseball

삼성의 새로운 해결사 'SK포' 탄생을 알리다

by 푸른가람 2009. 5. 8.
728x90
타선의 전반적인 타격슬럼프로 고민에 빠져있는 삼성에 새로운 해결사가 등장했다. 최근경기 성적으로만 본다면 전설적인 삼성의 '이승엽 - 마해영 - 양준혁' 클린업트리오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시즌 초반 팀을 위기상황에서 구원하고 있는 이들이 'SK포' 신명철과 강봉규다. 감독의 기대치와 팬들의 눈높이가 맞지않아 무수한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던 과거는 이제 잊어도 좋을 것 같다. 단, 지금과 같은 활약이 얼마나 지속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일 뿐이다.

강봉규와 신명철은 공통점이 많다. 두 선수 모두 이제 서른을 넘어 팀의 중심역할을 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강봉규와 신명철 모두 1978년생 (생일이 1월인 강봉규가 실제로는 한 해 선배)이다. 강봉규가 경남고 - 고려대, 신명철이 마산고 - 연세대를 나와 부산, 경남출신이며 모두 국가대표를 지낸 화려한 아마경력을 자랑한다.

강봉규가 1998년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거쳐 팬들의 기대속에 2000년 두산에 입단한 뒤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쳐지 못한채 2006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었듯, 신명철의 야구인생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국가대표의 화려한 이력서를 들고 2001년 롯데에 입단했지만 프로무대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부산팬들의 열화와 같은 기대와 성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단 첫해 그의 타율은 2할대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 다음 시즌에도 겨우 멘도사 라인을 넘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주전을 꿰차지 못해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하는 신세였고, 결국 강봉규가 삼성으로 옷을 바꿔입은 이듬해인 2007년에 삼성에서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됐다.

박한이와의 인연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박한이 역시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아마시절(부산고 - 동국대) 대표적인 강타자였다. 강봉규와는 199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광을 함께 누렸고, 동기 신명철과는 프로입단 전까지 부산, 경남야구를 대표하는 유망주였었다.

이 세명의 야구인생은 프로 입단후 극명하게 엇갈리게 된다. 박한이는 2001년 입단과 동시에 주전을 꿰차며 부동의 1번타자로 자리매김했다. 3년차에 접어든 2003년에는 드디어 3할타자의 반열에 들어서며 라이온즈의 중심으로 우뚝서게 된다.

가끔 어이없는 주루플레이로 정신병자 소리를 듣거나, 타석에서의 특이한 준비동작 떄문에 경기지연의 주범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한이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1번타자 자리를 떠나 이승엽이 떠난 빈 자리를 메워줄 홈런타자로 성장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박한이의 2009년은 참담하다. FA자격을 얻게되느니만큼 그 어느해보다 중요한 시즌이건만 출발부터 불안했다. 부상때문에 4월 21일 LG전에서야 모습을 보인 박한이는  무슨 이유에선지 상대선발로 좌완투수가 나오는 날에는 선발 라인업에서도 자주 빠졌다. 부상에 따른 훈련량 부족의 후유증인지, 기량 저하가 원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타율도 2할대 중반을 맴돌고 있다.

그늘이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이다. 박한이의 2009년이 현재까지 잿빛이라면 강봉규와 신명철은 모처럼 어깨에 힘들어가게 됐다. 인생사 새옹지마처럼 셋의 야구인생이 또한번 반전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면 조금 섣부른 것일까. 물론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 기나긴 페난트레이스에서 기록의 부침은 늘상 있는 일이고, 신명철의 경우 이따금씩 보여주는 깜짝 활약 탓에 '유혹의 명철신'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는 형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봉규는 25경기에 출장해 .312의 타율에 1홈런 8타점이 쏠쏠한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특히 5월 들어서는 25타수 12안타 .480의 맹타에 출전한 6경기중 4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하는 등 팀의 상승세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4월에 .231의 저조한 타율에 무려 14개의 삼진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즌 초반 김상수에 빼앗겼던 2루자리를 되찾은 신명철의 활약은 더욱 눈부시다. 체력적 부담으로 신인의 한계를 드러내며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상수를 대신해 1번타자에 신명철의 이름이 오르자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선동열감독의 선수기용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예전의 그를 떠올린다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두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5월 2일 SK전부터 1번에 둥지를 튼 신명철은 이후 네경기 동안 멀티히트 행진을 계속했다, 특히 5월 6일 한화전에서는 5타수 3안타에 6타점을 혼자 쓸어담으며 삼성의 새로운 해결사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5월 타율만 무려 .417에 홈런 2개, 8타점을 기록중이다.

어차피 인생사 새옹지마인 법. 이들의 야구인생이 어느 순간 또 어떻게 뒤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박한이가 언제까지 선동열감독 플래툰시스템의 희생양이 되라는 법은 없다.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는 박한이는 누가 뭐라한들 지금껏 삼성을 이끌어온 중심타자였으며, 앞으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맡아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설레발이라 할 지라도 '인생역전'을 위해 땀흘린 보람을 느끼고 있을 강봉규, 신명철 두 선수에 대한 칭찬을 아낄 필요도 없다. 삼성은 비록 3위를 달리고 있긴 하지만 내부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 선발투수진도 불안한데다, 마무리 오승환은 이따끔씩 큰 것 한방을 허용하며 구단관계자들의 간담을 서늘케하고 있다.

타선은 더욱 비관적이다. 양준혁, 박석민이 빠진 타선의 중량감은 다른 7개구단과 비교 자체가 안될 정도다. 팀 홈런수는 가장 적고, 타선의 엇박자도 여전하다. 그나마 1,2번에 붙어있는 신명철과 강봉규만이 제 역할을 묵묵히 해주고 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감히 'SK포'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로 한다. 비록 그 포가 언제 두동강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그동안 그들을 비난했던 미안함을 씻어볼 요량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시즌내내 SK포의 활약이 계속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기록은 스탯티즈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