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는 봄 경치가 수려하다고 해서 붙은 ‘춘마곡’이라는 별칭이 더 유명하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 라고들 하는데 내가 찾았던 마곡사나 갑사 모두 봄, 가을을 가리지 않고 사계절 언제나 좋았다. 좋은 것은 어느 때 찾아도 좋은 법이다. 태화산의 나무와 봄꽃들은 연한 물감을 퍼뜨린 듯 봄볕에 생기가 움터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래도 봄날 마곡사의 진경(珍景)에 푹 빠진 사람들은 긴 겨울을 지나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신록이 우거지는 마곡사의 봄에 홀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고들 한다. 절 이름은 법문(法問)을 듣고 경치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니, 그 모습이 마치 삼이 서 있는 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새로 조성된 넓은 주차장에서 십여 분 정도 느릿느릿 걸으면 절에 당도한다. 울창한 숲 덕분에 눈이 시원하다. 계곡의 물소리는 새소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을 선사한다. “절은 고갯마루 아래에 있었고, 10여 리 길가에 푸른 시냇물과 흰 바위가 있어 저절로 눈이 트였다.”며 마곡사 주변의 풍경을 예찬(禮讚)했던 옛사람의 표현 그대로다.
마곡사가 위치한 산과 물의 위치는 태극형으로 택리지나 정감록 등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전란을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사람이 살기 좋은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손꼽혔다고 한다. 절을 둘러싸고 태극 모양의 계류(溪流)가 휘감아 돌다가 물줄기가 천왕문 앞에서 만나 흘러내려간다.
아쉽게도 비서(祕書)들의 예언은 맞아 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마곡사는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기 이전까지는 폐사가 돼 도적들의 소굴로 전락(轉落)했었고, 임진왜란 때도 큰 화(禍)를 입어 모든 건물이 소실(燒失)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과도 인연이 깊다. 백범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범(弑害犯)인 일본군 중좌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서 사형수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한 후 마곡사에서 은거생활을 하며 원종스님이란 법명으로 출가(出家)했다.
응진전 옆에 선생이 지냈던 백범당과 해방 후 다시 찾아와 심었다는 향나무,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식을 치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삭발바위가 마곡사 일대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마곡사, 삭발바위, 군왕대, 백련암을 연결한 ‘백범 명상길’이 조성되어 있으니 절만 둘러볼 것이 아니라 시원한 마곡사 계곡의 물소리를 즐기며 여유롭게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금강역사상과 문수, 보현동자상이 맞이한다. 번뇌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면 본격적인 절의 영역에 들어선다. 지국(持國), 광목(廣目), 증장(增長), 다문(多聞)의 사천왕이 불국토를 수호하는 문지기로 서 있다. 사천왕상은 거대한 크기로 악귀를 발밑에 깔고 있는 모습이지만, 무섭기보다는 차라리 어수룩해 보인다. 이는 조선 후기 소조불(塑造佛)로 모셔진 천왕상의 전형이라고 한다.
대개 절들이 초입에 개울을 건너 몸과 마음을 씻게 하고 나서 본격적인 절 영역이 시작되는 것과는 달리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수행(修行) 공간인 남원과 교화(敎化) 공간인 북원으로 나뉘는 독특한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개울을 건너기 전에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영산전 영역이다.
개울 남쪽에 있어 남원이라 부르는 수행공간이다. 명부전과 국사당 등 주로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전각들과 선방인 수선사, 요사(僚舍)인 매화당이 있다. 단풍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가을이면 천지가 불타는 듯 붉은빛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진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인 영산전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閑寂)한 느낌마저 든다. 영산전 현판은 조선의 7대 국왕인 세조가 쓴 글씨라고 한다. 매월당 김시습이 이 절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세조가 찾아왔는데, 정작 만나지 못하고 글씨만 남기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마곡사를 둘러보고는 만세(萬世) 동안 없어지지 않을 땅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오래된 단청은 빛이 바래 예스럽다.
극락교를 지나 개울을 건너면 마곡사의 중심공간인 대광보전에 이른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장중한 팔작지붕 건물로 수평으로 듬직하게 앉아 있다. 정조 12년(1788)에 세워졌으니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던 그 시대 문화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준다. 대광보전 현판은 영․정조 시대 예원(藝苑)의 총수로 불리는 표암(豹菴) 강세황의 글씨이다.
법당의 서쪽에는 본존인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셔 놓았는데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무량수전에는 서방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이런 모양으로 앉아 있는데 비로자나불이 이처럼 앉아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광보전 안에는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러 왔을 때 타고 왔다는 연(輦)이 지금도 남아 있다.
대광보전 앞에는 상륜부에 모자를 쓴 듯 금속으로 된 독특한 형태의 탑을 얹고 있는 석탑이 있다. 보물 제799호 마곡사 오층석탑이다. 이런 청동제의 보탑을 풍마동이라고 하는데 라마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기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대광보전 뒤편으로 지붕 하나가 불쑥 솟아 있다. 계단을 올라 오솔길을 따라가면 넓지 않은 터에 2층 건물의 대웅보전이 있다. 1층이 정면 5칸 측면 4칸,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당당하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부여 무량사 극락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중층 건물이다.
법전 가운데 석가모니를, 서쪽으로 아미타여래를, 동쪽으로 약사여래를 모셨다. 약사여래는 약합을 들지 않고 아미타여래와 똑같은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정면 문의 칸살이 단순한 격자에서 벗어나 창살에 얌전한 조각을 얹은 빗꽃살이다. 조각이 화려하지 않아 선뜻 눈에 띄지 않으나 은근한 맛이 있고,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간결한 격자무늬 그대로 빛이 비쳐들어 매우 단정한 인상을 준다.
그 안에 손때 묻어 윤기가 자르르한 싸리나무 기둥이 넷 있다.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물어 많이 돌았으면 극락길이 가깝고 아예 돌지도 않았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둥을 붙들고 돌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그대가 가는 이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따사로운 봄볕 아래 걷다보니 이내 백범당에 걸린 서산대사의 선시(禪詩) 아래 섰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즐겨 사용하시던 휘호라고 한다. 마곡사가 세상에 전하는, 나에게 던지는 화두(話頭)처럼 느껴진다.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도 모를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왠지 자신이 없음은 나뿐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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