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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같았던 절 - 쌍봉사

by 푸른가람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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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화순에 왔다. 화순(和順)이라는 고을 이름처럼 화순 땅은 부드럽고 순하다. 쌍봉사는 ‘천불천탑의 절’ 운주사와 더불어 화순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일정에 쫓겨 지나쳐야만 했던 몇 해 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쌍봉사는 무척이나 작은 절이다. 번잡한 도회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덕분에 조용하고 한적한 산사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큰 절을 다녀온 직후여서 그런 느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수백 수천의 신도와 관광객이 운집하는 절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넉넉함과 여유라고나 할까.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절 구석구석에 내려앉아 한가로이 경내를 노니는 사람들을 보듬어 주는 듯하다. 

쌍봉사 대웅전은 유일하게 3층 목탑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목조건축물이다. 새로 복원된 건물도 무척 아름답지만 1984년 소실되어 사라진 원조의 품격에 비하긴 어려울 것이다.

쌍봉사는 전남 화순면 이양면 증리 계당산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철감선사의 도호(道號)를 따서 쌍봉사라 불렸다. 이 절에서 선문9산의 하나인 사자산문(師子山門)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일주문에 쌍봉사자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나지막한 산과 구릉이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지고 순박한 논들이 한가롭게 펼쳐지다가 멀리 절집이 아스라이 드러나면서 생경한 풍경에 눈이 확 떠진다. 낮은 담장 위로 불쑥 튀어 오른 중층 건물의 당당한 모습이 무척 이채롭다. 천왕문 앞에 서면 기둥 사이 대웅전의 모습이 맞춤옷을 입은 듯 딱 들어온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3층 목탑 모양을 한 독특한 이 전각은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쌍봉사 대웅전이다. 

3층 목탑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인데다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목조건축물로 보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1984년 4월 초에 신도의 실수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불타기 전에는 3층 지붕이 팔작지붕이었는데, 1986년에 복원하면서 당초의 원형을 살려 사모지붕으로 바꾸었고 그 위에 석반(石盤)을 얹고 상륜부를 보완했다고 한다. 옛 대웅전 지붕이 팔작지붕이었던 이유는 원래 탑이던 것을 대웅전이라는 전각으로 고쳐 쓰게 되면서 거기에 맞게 개조한 것이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옛 대웅전을 본 적이 없는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에는 새로 복원된 대웅전도 무척이나 멋있다. 하지만 새것이 원조(元祖)를 뛰어넘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이런 형태의 목탑들이 절마다 세워져 우열을 다퉜을 삼국시대 초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대웅전 앞 감나무에 풍성스럽게 달린 붉은 감들이 참 정겹다.

대웅전 뒤에는 기다란 기단 석축이 남아 있다. 대부분 그냥 스쳐 지나칠 뿐이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이 자리에 원래의 대웅전이 있었으리라 추정되기 때문이다. 돌을 반듯하게 잘라서 쌓은 것이 아니라,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다른 돌의 귀퉁이를 쪼아 내어 되는대로 이은 것이다. 그래서 돌덩이들은 생긴 것이 제멋대로다. 크고 잘 생긴 놈, 짧고 뭉툭한 놈, 불길에 그을린 것처럼 거무스름한 놈까지. 완벽한 부조화 속의 조화라 부를만 하다

쌍봉사에 오면 잊지 말고 꼭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대웅전 뒤 왼편으로 돌아나가면 대숲을 따라 난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볕이 잘 드는 살짝 트인 자리에 우리나라에서 첫손에 꼽히는 철감선사 부도와 부도비가 놓여 있다. 

철감선사 부도는 9세기 말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석조 부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국보 제5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각 기법이 정교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철감선사 부도는 통일신라 석조 부도의 전형(典型)인 팔각 원당형이다. 세부 조각 수법에서는 목조건축 양식을 본뜨고 있어서 당시 건축 기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도굴꾼들이 사리장치를 빼내기 위해 쓰러뜨려 놓았던 것을 1957년에 다시 짜 맞추었다고 한다.

전문적인 식견(識見)이 없을지라도 조각(彫刻)을 살펴보면 정교하고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정이 단 한 번만 빗나가도 돌덩이 전체를 버려야 하는데 석공의 손놀림에는 한 치의 실수도, 주저함도 없다. 

통일신라 때의 돌 만지는 기술이야 이미 정평이 났지만, 이런 명작(名作)은 기술만으로도, 지극한 정성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저 경탄(敬歎)하며 바라볼 뿐이다. 철감선사가 입적(入寂)한 경문왕 8년(868)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9세기 말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도의 높이는 2.3m이고 국보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철감선사 부도비(보물 제170호)는 옆에 있는 부도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이 남아 있다. 비를 지고 있는 귀부를 보면 나름의 표정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 거북은 매우 씩씩하고 젊은 힘이 넘친다. 바라보고 있으면 좋은 기운이 전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

쌍봉사는 규모는 작은 절이지만 넉넉한 품을 가졌다. 당우(堂宇)는 많지 않지만 낮은 담장 아래 마치 어깨동무하고 있는 듯 고목들이 완연한 가을빛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절을 품어 안고 있는 뒷산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쌍봉사와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극락전 앞 단풍나무의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있다. 한 가지에서도 푸른빛에서 붉은빛까지 다양한 빛깔을 지닌 잎들이 빛깔의 향연을 펼치는 듯하다. 가을이 깊어지면 풍성하던 잎들도 다 떨어져 버릴 테지. 태어나면 소멸하고, 차면 곧 기우는 것이 세상 섭리(攝理)인 것처럼 떠나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자연을 닮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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