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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부석사

by 푸른가람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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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달려 부석사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지기 전에 부석사의 고즈넉함을 즐기려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운이 좋으면 태백준령(太白峻嶺) 너머 떠오르는 붉은 일출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무심한 빗줄기는 도무지 잦아들 줄을 모른다.

매년 결심을 하곤 한다. 올가을엔 노랗게 물든 부석사의 은행나무 길을 꼭 걸어보리라. 그러나 매번 또 이렇게 때를 놓치고 만다. 은행잎들은 이미 나뭇가지를 떠나 길 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다. 겨울을 저만치 앞둔 계절에 나뭇잎들도 자신을 치열하게 불태우고는 태어났던 땅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부석사는 비와 안개에 갇혀 있다. 짙은 안개로 시야를 허용치 않더니 어느 순간 하늘이, 산이 열리기 시작한다. 부석사를 수십 번은 다녀갔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렇게 신비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는 건 처음이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부석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갈 수는 없지만 몽환적(夢幻的)이면서도 마음마저 저만치 내려놓게 만드는 부석사를 마음에 담아갈 수 있어서 한편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부석사에서 바라본 새벽의 태백준령 풍경은 장엄한 일출보다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비와 안개에 갇혀있던 산과 하늘이 마치 거짓말처럼 잠시 제 모습을 내어주었다.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부석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안양루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비로소 유홍준 교수가 예찬(禮讚)했던 부석사의 장쾌(壯快)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부석사 가장 높은 자리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최고의 풍경을 바라보던 이 날의 행복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놓치기 싫은 아름다움은 찰나의 순간만큼 짧기만 하다. 겨우 몇 분의 시간이 지나면 눈앞에 펼쳐지던 황홀경은 다시 안개에 묻혀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어차피 마음에 담은 이미지를 사진으로 오롯이 표현할 재주는 없으니 그 모습 그대로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 두었으니 충분하다. 찾는 이의 발걸음이 뜸한 새벽녘의 부석사는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부석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데 마지막 남은 단풍나무가 안개에 젖은 나뭇잎들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는 듯하다. 이날의 부석사는 비와 안개에 젖었지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요함과 풍요로움에 젖어 부석사를 내려올 수 있었다. 속세에서의 삶도 이날처럼 촉촉히 젖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부석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풍광도 좋거니와 건축물 또한 아름다우니 꼭 관심 있게 챙겨 보아야 한다. 절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아미타불을 모신 본전이다.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는 유서 깊은 건축물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손꼽혔지만, 이후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연대가 조금 앞서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무량수전은 비단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는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미학적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연구하는데 한 평생을 보냈던 혜곡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통해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는데 공헌했다. 무량수전의 기둥들은 가운데가 가장 두껍고 위 아래로 갈수록 두께를 줄임으로써 곡선의 체감을 갖도록 했는데, 이를 배흘림기둥 이라 부른다. 봉정사 극락전이나 수덕사 대웅전같이 오래된 목조건축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장쾌한 산줄기를 바라보는 것이 부석사 제일의 풍경이라 치면, 파란 하늘과 산자락을 배경 삼아 돌계단을 따라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비스듬히 이어지는 풍경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라 할 만하다.

무량수전 안에는 국보 제45호인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보통 불전의 정면에 불상이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불전의 서편에서 부처님이 동쪽을 바로보고 있다. 무량수전의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불상을 정면에 배치하면 사람들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염려해 왼편으로 치우진 곳에 둠으로써 공간감을 만들어 내고, 불상 앞에 늘어선 기둥으로 인해 경건함과 장엄(莊嚴)한 느낌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협시보살이나 다른 보살이 같이 모셔져 있지 않고 아미타불만이 독존으로 봉안되어 있다. 이는 다른 사찰의 금당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것으로 무량수전이 과거 금당(金堂)이 아닌 강당(講堂)이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최근에 부석사 경내에서 발견된 명문와(銘文瓦)에서 강당이란 이름이 나오고, 무량수전과 관련된 문헌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인데, 역사적 진실의 실체에 접근해간다는 의미에서 사뭇 흥미로운 대목이다.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면 오래된 습관처럼 석등 사이로 무량수전 편액을 살펴보곤 한다. 카메라 앵글 속 피사체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편액의 글씨는 중후하면서도 부드럽다.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영주로 내려온 고려 공민왕이 쓴 글씨라고 하니 무량수전을 바라보노라면 역사 속 인물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문화재적 가치는 무량수전에 비해 높게 인정받지 못하겠지만, 보다 더 다채롭고 풍성한 풍경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안양루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안양루는 누각이되, 누문의 역할도 하고 있다. 안양루와 범종루 사이를 채우고 있는 넓은 마당에서 보면 안양루는 2층 누각인데,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보면 단층짜리 전각처럼 보인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장쾌한 산줄기를 바라보는 것이 부석사 제일의 풍경이라 치면, 파란 하늘과 산자락을 배경 삼아 돌계단을 따라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비스듬히 이어지는 풍경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라 할 만 하다. 안양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뜻함이니 안양문은 곧 극락에 이르는 문이라 여길 수 있겠다.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이곳에 시문으로 남겨 놓았다고 하니 찾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여행법일 것 같다.

平生未暇踏名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天地如萍日夜浮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김병연, <浮石寺>

무량수전과 같이 이름난 건축물을 보며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앞에 서면 미학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세월의 무게에 절로 압도당할 것이기에. 하지만, 그러한 찬사와 감탄이 공허함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면 그것을 완성시켰던 목수의 흔적까지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한양대 건축학부 서현 교수의 따끔한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을 두고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의젓하고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고 표현했다.

그는 단언한다. 단 한 번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그들의 존재가 침묵의 건물을 통해 드러나지 않을 때, 우리 앞의 그것은 단지 나무토막의 조합에 불과하다고. 되뇌는 아름다움은 가식적이고, 찬미는 공허하다고. 마음에 각인되지 않고 스치는 노정의 여행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량수전 앞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오래되고 말 없는 건물 뒤에 드리워진 목수들의 그림자를 좇아본다.

건축 자체의 미학에도 까막눈인 내게 부담스러운 가르침이다. 하지만 짧은 순간 머무르며 쫓기듯 몇 장의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만은 충분하기에 그 길을 쫓아 가보려 한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그런 여정이 되길. 수고스러운 발걸음이 시간 낭비에 그치지 않는 답사 여행이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아주 오래전 꽤나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로 기억된다. 해질 무렵에 부석사에 올랐던 적이 있다. 때마침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춰 웅장하면서도 따뜻한 종소리가 산자락을 휘감아 돌았던 그때의 감흥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방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그 어둠 속으로 번잡스럽던 마음도 서서히 사라지는 듯한, 묘한 느낌이었다.

절을 찾는 분에게는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절을 찾으시라고 권해 드리곤 한다. 확실히 한낮의 번잡함 속에서 바라보던 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는 곳, 부석사를 찾아가는 작은 수고를 더 이상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분명 그 걸음은 느리되, 그 시선은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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