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에 있는 작은 절이라고 지인에게 청암사를 소개했다 아차 싶었다. 수많은 말사를 거느린 조계종 본사는 아니지만, 청암사 자체는 결코 규모가 작은 절이 아니다. 대웅전, 진영각, 육화료, 정법루, 극락전, 보광전 등 당우만 해도 여러 채요, 입구에서부터 경내에까지 시원스런 계곡을 낀 숲길이 한참이나 이어진다.
왜 청암사를 떠올리면서 ‘작은 절’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절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도량(道場)이다. 그래서인지 당우들의 모습도 결코 위압스럽지가 않고 부드럽고 포근하다. 잘 정돈되고 정갈한 아기자기함이 그런 착각을 불러온 게 아닐까 혼자 결론을 내려 봤다.
청암사가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몇 해 전 어느 봄날에 마치 운명처럼 청암사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오른다. 대웅전과 육화료가 훤히 보이는 계곡 너머 범종각 앞에 한참을 앉아 있던, 그날의 서늘하면서도 따뜻했던 느낌이 청암사를 생각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마음에 그려진다. 쉼 없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 잡된 생각들이 모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또 하나, 입구에 차를 대고 일주문에 이르는 아름다운 숲길도 빼놓을 수 없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길이 시원스러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사시사철 푸른 숲이 내어주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소나무들의 자태가 아름답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함이 폐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진다.
청암사는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극락전과 보광전이 있는 계곡 위쪽과 대웅전과 진영각, 육화료 등 대부분의 당우들이 몰려있는 아래쪽으로 대별할 수 있다. 고풍창연한 느낌의 극락전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이 정겹다. 화려하게 칠해진 단청보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아 나무의 느낌이 제대로 살아나는 극락전의 낡은 모습이 더욱 좋다.
자세히 보면 못 보던 것들이 보이는 가 보다. 극락전에 새겨져 있는 문양(文樣)이 독특하다. 도깨비 모양이라고 해야 할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느 사찰에서 쉽게 보기 힘든 것임은 분명하다. 극락전도 그렇고, 육화료도 마찬가지인데 청암사의 건물들은 절집이라기 보단 오래된 사대부 집처럼 느껴진다.
대웅전 앞 다층석탑의 모양도 이채롭다. 원래 이 석탑은 성주의 한 논바닥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흡사 천불천탑의 절 운주사에서 만났던 탑들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층석탑의 모양과 비교해 보면 안정감이 떨어져 보인다. 아래쪽 기단이 좁아서 그런지 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데 그 모양이 헛된 욕망을 좇아 늘 번민으로 위태로운 중생들의 마음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청암사는 푸른 바위라는 뜻을 가졌다. 그 이름의 연유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설명이 없다. 근처에 푸른 이끼가 낀 바위가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뭔가 흥미진진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대웅전과 보광전 지붕의 기와가 특이하게 청기와로 이어진 것 또한 뭔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매번 청암사를 찾을 때마다 해보게 된다.
청암사는 인현왕후와 인연이 깊은 절이다. 숙종의 계비(繼妃)였던 인현왕후는 서인과 남인 간의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던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폐위된 이후 이 절에서 3년간 머물면서 훗날을 도모했다. 그때 머물렀던 곳이 극락전과 보광전이고, 청암사 인근의 무흘구곡에 인현왕후길이 만들어져 오래된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극락전은 왕비를 예우하기 위해 청암사에서 사대부 집안의 한옥 형태로 지은 전각이다. 형태가 여느 절집과는 조금 다르다 느낀 연유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인현왕후는 이 절에 머물며 보광전에서 복위(復位)를 염원하며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인지 다시 왕비로 복위된 다음 왕실에서는 청암사에 전답을 하사(下賜)하고 주변의 산을 보호림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인현왕후 집안은 당시 국정을 주도했던 서인세력의 명문가였다. 형조판서를 지냈던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이었던 그녀는 병으로 요절(夭折)한 인경왕후의 뒤를 이어 열다섯 나이에 왕비가 되었다. 불행히도 지아비의 사랑을 받지 못한데다 희대의 요부(妖婦)로 역사에 남아 있는 희빈 장씨(장옥정) 탓에 남인과 서인과의 치열한 싸움에 휘말리기까지 했으니 한 여인이 짊어져야 할 삶이 너무나 고단했으리라.
속세의 번잡함을 잊으러 찾은 산사에서 지나온 역사의 아픈 단면을 되짚어 보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하지만, 푸른빛으로 가득한 수도산의 숲길을 걸으며 우리네 삶의 속절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청암사가 놓인 수도산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생태적으로도 매우 특별한 곳이다. 지난 2018년 8월에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제329호인 반달가슴곰을 이곳에 방사하기도 했다. 수도산으로 향하던 이 곰은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앞다리 봉합수술을 받고 야생적응 훈련을 마친 뒤에 자연의 품으로 다시 돌아갔다.
수도산 일대에 참나무가 많아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전문가들을 판단하고 있는데 2019년 6월에는 수도산에서 직선거리로 70km 이상 떨어진 구미 금오산에서 이 곰이 발견되기도 했다. 혹여 수도산을 걷다가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는, 생명력 넘치는 반달가슴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절을 한 바퀴 돌아 대웅전 앞에 섰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풍경(風磬)소리와 스님의 독경(讀經)소리에 흠뻑 빠졌다. 계곡 옆 범종각 앞에 앉아서는 계곡을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마치 머릿 속이 텅 비어있는 듯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영원히 이곳에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꽤 많은 신도들이 들어왔다 나감을 반복했고, 스님들은 점심 공양을 위해 육화료를 가득 채웠다가 이내 흩어졌다. 계곡의 물은 쉼 없이 흘렀고 바람은 불었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속 욕망들은 연기처럼 쉼 없이 피어올랐다가 또 사그라지기를 거듭했다. 그 속에 나는 있었고, 또한 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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