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비양도가 보인다. 협재해변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게 느껴진다. 한달음에 헤엄쳐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맑고 투명한 바다는 햇빛이 바닥에 비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에머랄드빛이란 말은 너무 식상하지만 달리 표현할 재간이 없다. 휴가철이 끝나 인적이 드문 협재해변. 이곳이 내가 제일 사랑하는 제주도의 풍경이다.
파도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부드러운 모래가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사람들은 풍경 속 점처럼 박혔다 이내 사라진다. 딱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서쪽 하늘로 석양이 질라치면 카페 의자에 몸을 깊숙이 뉘이고 잠깐의 절경을 만끽하면 그만이다.
언젠가 저 푸른 바다를 함께 걷고 싶다. 이왕이면 달빛이 잔잔히 내려앉는 밤바다가 제격일 듯 싶다. 오직 파도 소리, 바람 소리만이 우릴 가득 안아주겠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협재해변에 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섬, 비양도가 늘 궁금해진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떠오른다고들 한다. 협재해변 건너편 비양도에서 바라보는 제주 바다와 한라산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직접 떠나봐야 한다. 한림항에 가면 하루에 네 번 비양도에 가는 배편이 있다니까 배를 타고 제주의 바다를 오롯이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림항에서는 5km, 협재해변에서는 3km 정도 떨어져 있다. 바로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더니 호기롭게 헤엄쳐 건널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비양도란 이름은 날아온 섬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름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전한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산봉우리 하나가 제주를 향해 날아오다가 지금의 자리에 다다랐을 때 굉음에 놀란 한 부인이 “거기 멈추어라.”고 소리치자 바다에 떨어져 섬이 되었단다. 전설 속의 누군가가 되어 조금만 더 협재해변으로 당겨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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