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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갖고 있는 지 - 담양 소쇄원

by 푸른가람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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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꼭 가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해 줄 수 있는 곳이 몇이나 될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보니 내 맘에 들었다고 꼭 그 사람도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좋은 사람, 좋은 곳, 좋은 음식을 소개해 주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고, 그런 이유로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내게 소쇄원(瀟灑園)은 마음에 두고 늘 그리워하는 장소 가운데 한 곳이다. 영화 한 편 덕분에 소쇄원을 알게 되었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홀로 소쇄원을 찾았던 것이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처음 느꼈던 감흥보다는 조금 옅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쇄원은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설레고 언제든 시간이 나면 달려가고 싶어지는, 흔치 않은 곳이다. 산책하듯 몇 걸음만 움직이면 푸른 대숲을 이는 바람소리, 아담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꿈을 꾸듯 광풍각(光風閣) 마루의 온기를 손으로 느껴보는 나와 마주치게 된다.

양산보의 별서정원이었던 소쇄원은 우리나라 원림의 멋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하서 김인후는 <소쇄원 48영>이라는 시로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길이 남겼다.

워낙 많이 알려진 탓에 찾는 발길도 부쩍 늘었다. 그래서인지 아쉽게도 ‘금단(禁斷)의 영역’ 또한 생겨났다. 한적(閑寂)하게까지 느껴지는 소쇄원 구석구석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던 예전에 비하면 인파에 쫓기듯 자리를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물론 이것도 다 욕심일 뿐이다. 좋은 것은 혼자만 가지고, 혼자만 호젓하게 즐기고 싶다는 못된 욕심 말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른 법이니 함부로 개인적인 생각을 정답인 양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3대 정원이라는 거창한 수식어(修飾語)가 붙는 이 소쇄원을 소개함에 있어서는 더욱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크기와 규모를 중시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면 필시 실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오곡문(五曲門)은 담 아래의 계곡물 바로 옆쪽에 있었던 협문(夾門)으로 내원과 외원을 이어준다. 담 아래 터진 구명으로 흘러내린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쇄원은 그저 소박하고 아담하다.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빌려 그 속에 또 다른 자연으로 건물을 배치해 두었을 뿐이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물을 지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이유로 유홍준 교수가 극찬한 우리나라 원림(園林)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소쇄원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민간정원으로 사랑받고 있는 소쇄원도 어느덧 500년 넘게 나이를 먹었다.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훈구파(勳舊派)에게 몰려 화순으로 유배(流配)되자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양산보 또한 낙향한다. 고향인 담양에 내려 와 은둔(隱遁)의 공간으로 조성한 별서(別墅)의 원림이 바로 이곳 소쇄원이다. 

  소쇄라는 말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인데, 양산보의 호가 소쇄옹(瀟灑翁)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도가적 삶을 살았던 조선 선비들이 교류했던 곳인데 경관의 아름다움이 탁월(卓越)하여 ‘문화유산의 보배’로 평가받고 있다. 남에게 팔지 말며,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라는 양산보의 유언대로 지금껏 잘 보존되어 온 것이 참 다행이다. 

  크지 않은 공간이다. 전체 면적은 1,400여 평 남짓인데 남아 있는 건물도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 등 몇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애양단, 오곡문 같은 오래된 담장뿐이다. 입구에 서면 한눈에 소쇄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어 더 큰 공간을 온전히 누리고자 했던 원림 조성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곳은 세상 그 어디보다 크고 깊은 공간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애양단과 오곡문을 따라 걸어본다. 담장 아래 붉은 동백꽃이 피었다. 이상하게도 동백꽃을 만나게 되면 항상 땅에 떨어져 있는 꽃송이에 눈길이 간다. 사람들의 발길에 으깨지고 바람과 비에 흐트러진 꽃은 오히려 더욱 붉게 타오르는 듯하다. 그 강렬한 느낌에 이끌려 동백나무 근처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오곡문 옆 화계(花階)의 기다란 담장을 따라 가면 제월당에 이른다. 계단과 석축으로 쌓아 올린 소쇄원의 가장 높은 공간에 있다. 제월당은 소쇄원의 중심 영역이자, 주인을 위한 사적 공간이다. 구들과 마당이 있어 안채 역할을 한다. 앞마당은 비워져 있어 전망이 시원스럽고 여유롭다. 화계에는 여러 꽃나무들이 계절 따라 피어나 풍류의 멋을 한층 돋웠으리라. 옛 선비들이 사랑한 매화 여러 그루도 심었을 테니 화계가 아니라 매대(梅臺)로 불러도 무방하겠다.

광풍각 마루에 앉아 깊어가는 소쇄원의 가을을 완상(玩賞)하는 여행객들의 표정이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양산보가 세운 광풍각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고 양산보의 손자인 양천운에 의해 1614년에 복원되었다.

제월당 아래는 광풍각의 영역이다. 제월당이 안채라면 광풍각은 사랑채다. 손님이 찾아오면 작은 개울을 건너 광풍각 아래서 제월당의 주인을 불렀을 것이다. 광풍각 마루에 걸터앉아 그 오래 전 선비의 마음으로 소쇄원의 풍경을 가만히 완상(玩賞)해 본다. 광풍제월(光風霽月, 북송의 시인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품을 존경하여 쓴 글에 나오는 말인데, 인품이 심히 고명하며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다는 뜻이다)의 고매한 기품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암정사와 부훤당의 여백까지 채워주고 있었다.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고암정사와 부훤당의 빈 터에 서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건 어떨까. 고암정사(鼓岩精舍)는 양산보의 둘째 아들인 고암공 양자징이 건립한 서실로 추정하고 있다. 소쇄원도를 보면 내원의 담장 바깥쪽에 그려져 있다. 매번 소쇄원에 갈 때마다 제월당을 지나 담장 너머 대나무숲 사이쯤을 한동안 거닐어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쇄원 48영>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을 보아 소쇄원을 조성했던 초기에는 없었고, 이후 양자징이 벼슬길에 오른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훤당은 고암정사 곁 한단 낮은 자리에 있었다. 양산보의 셋째 아들 양자정의 서실로 쓰였는데 부훤(負暄)이란 말은 햇볕을 쬔다는 뜻으로 어버이에 대한 애틋한 정감을 드러낸 애양단과 맥이 닿아 있다. 양자정은 둘째 형 자징과는 달리 벼슬길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학식을 가진 인물로 지역의 교육기관 창건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하니 아버지의 유업을 잘 이어받았던 자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쇄(瀟灑)니 광풍(光風), 제월(霽月)이란 이름을 되뇔 때마다 참 멋진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의미 없는 존재일 뿐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그것에 꼭 들어맞는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비로소 내게로 와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이 되고, 평생 잊지 못할 인연으로 남게 되는 법이다.

  또 하나 소쇄원이 마음에 드는 이유가 있다. 오래된 세월을 느끼게 하는 담장의 기와 때문이다. 소쇄원을 찾을 때면 광풍각이나 제월당에 한참을 앉아 있는 시간만큼 언제나 이 기와를 바라보게 된다. 침묵의 언어로 그 오랜 세월을 되짚어 보기도 하고, 또 다가올 앞날에 대한 희망을 홀로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소쇄원 입구의 푸른 대나무숲 아래 서면 서늘한 바람이 따스한 위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마음에 물결이 일 때면 이곳에서 사그락 거리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아도 좋다.

  소쇄원에 들어서는 초입의 푸른 대숲도 참 좋다.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는 언제 들어도 내 마음에 따스한 위안을 안겨 준다. 이따금씩 마음에 물결이 일 때면 이곳에서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주변 풍경이 온통 흰 눈에 소복하게 덮일 한겨울이면 대나무의 푸른빛이 그 속에서 더욱 돋보일 테지. 그 황홀한 풍경을 꼭 한번 봤으면 좋겠다.

  그런 이유로 다음번 소쇄원 여행은 하얀 눈이 소담히 내리는 날이길 매번 기약(期約)해 본다. 인연이 닿는다면 내 생애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러지 못한다 한들 어떤가. 이른 봄기운이 신록으로 벅차오르는 날에도, 한여름 우거진 녹음 속에서도, 울긋불긋 예쁜 단풍으로 물드는 날에도 광풍각에 앉아 온통 하얀 눈 세상 속 푸른 대나무숲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을 테니까.

  일곱 살이나 어렸지만 나이를 뛰어넘어 양산보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하서 김인후는 석천 임억령,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호남의 명사들과 더불어 소쇄원을 자주 거닐었다. 1548년 소쇄원이 마침내 틀을 갖추게 되자 그는 <소쇄원 48영>이라는 시로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길이 남겼다. 마흔 여덟 편의 시를 통해 성리학의 근본에 충실하면서도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도 관대했던 자유분방한 선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소쇄원의 풍광에 심취한 하서 김인후가 시로 엮었던 것을 후대의 누군가가 <소쇄원도>라는 한 폭의 걸작으로 담아냈다. 덕분에 우리는 수백 년 전 소쇄처사 양산보가 혼돈(混沌)의 세속을 떠나 선계(仙界)에서 여유자적(餘裕自適) 했던 삶을 각자의 느낌으로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심우재 하성흡 화백의 그림과 곁들여 소쇄원을 거닐어 보노라면 오랜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는 깊은 속을 제대로 즐길 수 있으리라.

  소쇄원에선 언제나 민주와 현우를 만나게 된다. 2006년 10월 개봉했던 <가을로>라는 영화 속 민주가 띄운 나뭇잎이 현우에게 다다르는 장면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곳 소쇄원이다. 소복하게 쌓여 있는 하얀 눈이 대나무의 푸른빛과 절묘한 대비를 이루던 모습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영화 속 소쇄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진이나 영화 속 배경을 실제 가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쇄원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서 느껴지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했다. 마치 민주가 저만치에서 대나무 홈통에 나뭇잎을 띄워 보내고 있는 듯 착각을 하게도 된다. 소쇄원에 가게 되면 <가을로>를 떠올리게 되고, 영화를 볼 때면 난 항상 소쇄원을 그리워하게 된다.

대봉대 곁의 담장은 한겨울에도 볕이 잘 든다고 해서 애양단(愛陽檀)이라 불린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볕이 드는 양(陽)이라고 하는데, 효심을 잊지 않기 위하여 담을 쌓고 효를 상징하는 동백나무를 심었다.

  영화는 이미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빛바랜 추억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현우, 민주, 세진이 거닐었던 모든 곳들이 생생히 살아 있다. 그들의 걸음을 따라 오늘도 여전히 소쇄원을 거닐고 있는, 홀로 “소쇄소쇄” 바람소리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일까? 지독한 외로움이란 대답은 식상하다. 그것보단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끼니의 곤란함이 아닐까. 혼자 다니다 보면 그럴듯한 식사에 소홀해지기 마련이고 혼자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밥집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작가 최갑수의 얘기를 빌려 보자면 혼자 먹는 밥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는 이야기 한다. 혼자 밥을 먹을 때 떠오르는 얼굴은 아마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가장 필요한 사람일 거라고. 사는 게 힘겹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 혼자서 밥을 먹어 보라고.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입안으로 넣어 보라고. 밥을 먹고 있는 동안 떠오르는 그 얼굴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눠 보라고.

  정말 그렇더라. 지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위해 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고 있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더라. 내가 몹시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고마운 얼굴이더라.

당신은 당신 생에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가지고 있는지.
만약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최갑수, <잘 지내나요 내 인생>
 
  내 인생은 잘 지내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진 못하겠다. 일상의 구질구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맴돌아야만 하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이다. 내 생에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하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다는 위로를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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