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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어느 좋은 가을날에 걷고 싶은 우암의 길 - 화양구곡

by 푸른가람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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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의 가을은 어느새 절정을 지났다. 이제 스러질 날만 남았으되, 가을빛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하늘은 담은 물빛은 푸르고, 홍엽은 지쳐 눈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런 멋진 가을날이면 절로 마음이 설렌다. 어디든 떠나야 하는 바로 그때가 찾아온 것이다.

화양구곡은 조선시대를 관통한 유학자 우암 송시열이 머물렀던 곳이다. 속리산 국립공원의 화양천을 따라 3km에 걸쳐 있다. 우암이 흠모해마지 않았던 주자가 살았던 무이산의 무이구곡을 본땄다고 하니 철저한 사대주의자였던 우암의 면모가 여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스로는 천자의 땅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것을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주었던 명나라 신종 만덕제의 은덕을 기리는 만동묘까지 만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효종과 더불어 북벌정책을 추진했다고 그를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지만, 그마저도 오랑캐라 업신여기던 여진족이 세운 청왕조를 배격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우암은 조선 중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의 혼란한 사회를 예학을 앞세워 사대부 중심으로 이끌어 가려 했던 유학자였고, 치열했던 붕당 간의 정쟁을 주도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던 노회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송익필, 김장생, 김집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통해 그의 영향력을 유지시켜 나갔다. 주자학만을 최고의, 유일한 학문으로 중시하고 다른 사상이나 경전 해석을 배격하였던 그의 독단과 아집을 한국사의 아픈 손가락으로 평가하는 역사학자가 많다.

우암 송시열이 서재로 썼다는 암서재는 화양동계곡의 세찬 물줄기 위에 세워져 있다.학업에 정진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따로 가리지 않았던 대학자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선 역사적 배경, 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 그저 풍경만 즐기는 것이 좋겠다. 둘러볼 곳도 갈 길 또한 멀다. 화양구곡은 제1곡 경천벽부터 시작해 제9곡 파곶에 이르러 끝난다. 경치로만 보자면 맑은 날에 구름 그림자가 비친다는 운영담,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가득하다는 금사담을 으뜸으로 친다. 우암이 서재로 썼다고 하는 암서재는 세찬 물이 흐르는 계곡에 있다. 아침에 읍궁암에 가 효종을 기리며 통곡하고는 배를 타고 계곡을 건너 암서재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깊어가는 가을날의 멋진 풍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혼자라도 좋고, 다정한 이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인적마저 끊어져 선계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화양구곡의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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