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442

예천 초간정은 의구하되, 사람은 간 데 없구나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하였던가요. 맞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데 사람들의 모습만 달라졌습니다. 2년전 여름날 처음 초간정을 찾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초간정이라는 곳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제게 이날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 정자에 앉으면 시 한수가 절로 읊어질 것 같은 예천 초간정 : http://kangks72.tistory.com/758 2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다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새벽 일찍 회룡포에서의 일출을 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절정을 달리고 있는 계절답게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탁류 속에 가려져 있던 개울도 지금은 맑은 물빛을 되찾았습니다.. 2011. 12. 25.
솔숲 너머 푸른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 울진 월송정 월송정의 모습은 늘 변함이 없어 단조롭기까지 하다. 영화 속 월송정의 모습은 꽤나 낭만적이고 운치있어 보였는데 정자 자체는 크게 감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무언가 규모로 압도하는 맛이 있다거나,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하는 무게감이 있는 것도 이나라서 올 때마다 조금 심심함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월송정이라는 정자 자체보다는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소나무숲, 혹은 마치 월송정의 앞마당인 것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과 푸른 동해 바다에서 이 곳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인근의 이름난 해수욕장과 달리 이곳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금도 철책이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작은 문을 통해 철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열려있는 해수욕장이나 해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금단의 구.. 2011. 12. 23.
비에 갇혀있던 운문사에서 주인이 되다 여행을 다닌다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한 편입니다. 물론 흐린 날은 흐린대로, 비가 오는 날은 또 그런대로 맛과 정취가 있는 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란 하늘이 여백을 채워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기왕의 여행길이 화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욕심입니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고, 맘에 드는 사진 한장 건질 것 같은 기대조차 들지 않은 그런 날이라도 어디든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그런 날도 있는 법입니다. 무작정 일을 접고 운문사로 떠났던 어느 여름날도 그러했습니다.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요, 운문사에 푹 빠져 있는 것도 아닌데 정처없는 떠남의 행선지가 운문사였던 것도 묘한 일입니다. 인연이라 부릅니다.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은 그저 인.. 2011. 12. 18.
열린 문을 따라 이끌리듯 들어갔던 경산 난포고택 다녀온 지 한참 지난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느낌이 생생히 떠오르는 듯 합니다. 이런 것이 사진의 매력이자, 한장의 사진이 주는 고마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별다른 감흥없이 찾았던 곳이었는데, 그것마저 몇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또 하나의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것 또한 세월이 숙성되면서 주는 인생의 맛인 듯 합니다. 이날은 무작정 운문사를 향해 떠났던 날이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찌푸려 금새 비라도 쏟아질 태세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운문사에 들러 익숙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자니 어김없이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더군요. 준비성 없이 우산도 챙기지 않고 떠났던 혼자만의 출사는 예기치 못했던 고요한 산사에서의 고립을 낳았습니다. 당시엔 당혹스러웠지만 그 고립의 시간이 주.. 2011. 12. 18.
관세음보살의 미소가 따사로웠던 경주 기림사 기림사는 이번이 두번째 였습니다. 문무대왕릉에서 일출을 보느라 몸이 꽁꽁 얼어버린 날이었습니다. 기림사를 처음 찾았던 지난해 여름날의 풍경( 물소리, 새소리가 어울어져 더욱 싱그러운 기림사 숲길 : http://kangks72.tistory.com/706 )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바뀐 계절을 따라 기림사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좋았던 느낌만은 여전합니다. 온통 푸르렀던 기림사 숲길의 나무들은 어느새 잎들을 다 떨어뜨렸습니다. 여름날 더위를 잊게 해주었던 고마운 숲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빈 여백을 파란 하늘빛이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이 좋은 숲길을 조금 걸어가다 만나게 되는 천왕문 앞의 비스듬히 뻗은 소나무와 대나무의 푸른 빛은 언제나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기림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두가지 있습니.. 2011. 12. 12.
천년의 세월을 견딘 감은사지 삼층석탑 아래 마음을 묻어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주에서 꽤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이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학창시절의 전부를 보낸 곳이 경주입니다. 꼬맹이 시절인 30년 전에 살았던 경주 풍경이 지금의 제게도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습니다. 1982년 9월 어느날 생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경주의 첫 인상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다 시피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입니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서도 신라처럼 천년 가까이나 유지된 국가도 드물 뿐더러 경주와 같이 한 도시가 단 한차례의 천도없이 수도로서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래서 신라를 빼고 경주를 얘기할 수도, 경주를 빼고 신라라는 나라를 논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신라의 멸망 이후 다시.. 2011. 12. 11.
올겨울 가장 추웠던 날에 문무대왕릉의 일출을 보다 짧기만 한 계절의 절정, 가을이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또다시 세상은 무채색이 지배하는 겨울 풍경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김없이 계절은 제자리를 찾아 오는 법입니다. 굳이 겨울바다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에 동해안의 일출 명소 경주 문무대왕릉을 찾았습니다. 애시당초 작품사진같은 일출 장면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습니다만 수평선을 따라 드리워진 구름은 중무장한 채 기다리고 있던 수십여명의 사진사들에게는 분명 아쉬운 존재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세찬 파도, 때때로 날아 오르는 갈매기떼 등 일출 사진을 좀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줄 소품은 충분했었는데 말입니다. 대왕암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경주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 2011. 12. 11.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담양 식영정 담양은 유명한 것이 참 많은 고을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대나무가 많이 나는 고장이라 사회 시간에 배웠고, 나이를 먹어서는 떡갈비와 대통밥 등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을로' 라는 영화를 통해 소쇄원이라는 아름다운 원림을 알게 되고 나서는 담양을 정자의 고장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유홍준 교수 역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서 담양의 정자와 원림을 소개하면서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담양은 시가 문학의 중심지답게 수많은 누각과 정자와 원림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송강 정철의 흔적을 되살펴 볼 수 있는 송강정, 면앙정을 비롯해 소쇄원, 명옥헌, 환벽당, 취가정, 식영정까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돕니다. 한번 가기 힘든 담양을 서너차례 다녀오면서도 매번.. 2011. 12. 6.
굽이굽이 걸어서 만나는 늦가을의 불영사 몇해 전이었던가요. 어느 일간지에서 붉게 타오른 불영계곡의 단풍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그저 환상적이라는 말로는 표현 조차 안되는 그런 느낌이었지요. 그날의 감흥에 이끌려 불영사를 몇번이나 다시 찾았지만 아쉽게도 계절을 비켜가는 것인지, 제 눈에 먼지가 껴서인지 늘 뭔가 아쉬움이 남곤 합니다. 울진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동네입니다. 어쩌다 팔자에도 없는 8개월간의 근무를 한 적이 있어서인지, 그리고 그 세월만큼 많은 추억을 안고 돌아와서인지, 늘 애착이 가고 아련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싶은 여행길에 울진을 행선지로 잡았던 것도 다 그런 이유였을 겁니다. 불영사를 생각하면 절 보다는 절에 이르는 십여분 남짓의 숲길이 늘 .. 2011. 11. 25.
명옥헌의 붉디 붉은 배롱나무꽃은 졌지만.. 오래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습니다. 온통 붉은 배롱나무꽃이 지천으로 피어난 명옥헌의 여름날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아쉽게도 첫 방문은 그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무려 백일 넘게 피어나 여름 풍경을 화려하게 채색해 주는 배롱나무꽃이 다 진 명옥헌은 조금 스산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쉬움이 컸습니다. 대구에서 담양까지는 그리 만만한 거리가 아니니까요. 일년에 겨우 몇번쯤 전라도 땅을 밟게 되는데 그 흔치 않은 기회를 그 장소에 걸맞는 계절에 맞추기가 또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쇄원을 갈 때마다 명옥헌으로 가는 이정표를 보게 되는데 이제서야 가게 된 것도 어찌보면 명옥헌과 저와의 인연이 딱 거기까지인 탓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의 오희도가 자연을 벗.. 2011. 11. 23.
소쇄원에서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를 느끼다 누군가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해 줄 수 있는 곳이 몇군데가 될까요.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보니 내 맘에 들었다고 꼭 그 사람도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좋은 곳, 좋은 음식 등을 소개해 주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고, 그런 이유로 주저하게 되기도 합니다. 소쇄원은 제겐 언제나 마음 속에 두고 그리워 하는 장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영화 한편 덕분에 소쇄원을 알게 되었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홀로 소쇄원을 찾았던 것이 6년쯤 전의 일입니다. 그 날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소쇄원을 다시 찾곤 합니다. 처음에 느꼈던 그 감흥 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쇄원은 마음을 이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워낙에 많이 알려진 탓에 해마다 찾.. 2011. 11. 20.
비와 안개에 젖은 늦가을의 부석사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달려 부석사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지기 전에 부석사의 고즈넉함을 즐기려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운이 좋으면 부석사에서 멀리 태백산맥 너머 떠오르는 붉은 일출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따금씩 내리는 빗줄기는 잦아들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이면 모처럼 공짜 구경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부지런하신 매표원 아저씨는 빈틈을 허용치 않습니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부석사의 대표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은행나무 가로수길입니다. 바로 옆으로는 잘 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밭이 풍요로운 느낌입니다. 매년 결심을 하곤 합니다. '올 가을엔 노랗게 물든 부석사의 은행나무숲을 꼭 보고 말리라.' 그러나 매번 이렇게 때를 놓치.. 2011.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