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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명옥헌의 붉디 붉은 배롱나무꽃은 졌지만..

by 푸른가람 201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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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습니다. 온통 붉은 배롱나무꽃이 지천으로 피어난 명옥헌의 여름날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아쉽게도 첫 방문은 그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무려 백일 넘게 피어나 여름 풍경을 화려하게 채색해 주는 배롱나무꽃이 다 진 명옥헌은 조금 스산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쉬움이 컸습니다. 대구에서 담양까지는 그리 만만한 거리가 아니니까요. 일년에 겨우 몇번쯤 전라도 땅을 밟게 되는데 그 흔치 않은 기회를 그 장소에 걸맞는 계절에 맞추기가 또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쇄원을 갈 때마다 명옥헌으로 가는 이정표를 보게 되는데 이제서야 가게 된 것도 어찌보면 명옥헌과 저와의 인연이 딱 거기까지인 탓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의 오희도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이었는데 그의 아들 오이정이 이 곳에 명옥헌을 짓고, 정자 앞뒤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그 연못 주변으로 여러 꽃나무들을 심어 가꾼 인공 정원입니다. 전문적으로는 원림이란 용어를 사용하더군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설명된 소쇄원의 원림과 같은 이치입니다.


연못을 네모나게 만든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옛 정원을 보면 연못이 네모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3대 정원 가운데 한 곳으로 손꼽히는 영양 서석지 역시 연못이 네모나게 생겼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하늘은 둥글고 세상이 네모나다고 여겼기에 연못을 그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서양이나 동양이나 옛 사람들의 생각은 얼추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명옥헌의 물소리가 구슬에 부딪쳐 나는 소리와 같다 해서 그런 예쁜 이름이 붙었다 합니다. 소쇄원도 그렇지만 명옥헌이라는 이름도 참 좋습니다. 뜻도 좋고 부르기에도 좋은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사람에게나, 꽃에게나, 혹은 이런 건물에게도 무척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명옥헌 뒤 조금 높은 자리에 서서 명옥헌과 네모난 연못을 한참을 바라 봅니다. 지금은 비록 붉디 붉은 배롱나무꽃이 모두 떨어져 황량한 느낌을 주지만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더욱 붉게 빛나고 있을 명옥헌의 어느 여름날 풍경을 상상해 보니 마음이 설레네요. 다시 시간이 흐른 어느 여름날, 바로 그런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겠지요. 그날을 기다리며 또 일년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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