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

열린 문을 따라 이끌리듯 들어갔던 경산 난포고택

by 푸른가람 2011. 12. 18.
728x90


다녀온 지 한참 지난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느낌이 생생히 떠오르는 듯 합니다. 이런 것이 사진의 매력이자, 한장의 사진이 주는 고마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별다른 감흥없이 찾았던 곳이었는데, 그것마저 몇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또 하나의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것 또한 세월이 숙성되면서 주는 인생의 맛인 듯 합니다.


이날은 무작정 운문사를 향해 떠났던 날이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찌푸려 금새 비라도 쏟아질 태세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운문사에 들러 익숙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자니 어김없이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더군요. 준비성 없이 우산도 챙기지 않고 떠났던 혼자만의 출사는 예기치 못했던 고요한 산사에서의 고립을 낳았습니다.


당시엔 당혹스러웠지만 그 고립의 시간이 주는 절대 자유와 고독의 여운이 지금껏 남아 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그렇게 운문사를 떠나 그치다 내리다를 반복하는 빗속을 내려오다 만난 곳이 바로 이 난포고택입니다. 이전에도 이 길을 지나며 고풍스러운 건물을 보며 궁금했던 차에 차를 세우고 열려 있는 대문으로 이끌리듯 걸어 갔습니다.



묘한 일입니다. 이렇게 열려 있는 문을 보면 꼭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집니다. 가려진 공간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까, 그 안에는 어떤 사람과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이끌립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이내 내 것이 아닌 땅 위를 걷고 있다는 불안함에 자리를 내주곤 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의 심정이 된다고나 할까요.



난포고택은 임진왜란때 전라도사를 지냈고 후에 의병활동을 이끌었던 난포 최공철이라는 분이 살던 집이라 합니다. 명종 1년인 1546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그 역사가 생각보다 유구합니다. 물론 이후에 몇차례의 중수를 거쳤기에 지금 건물의 나이야 그리 오래되지 않았겠지만 곳곳에서 고풍스러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담장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꽃이 정겹습니다. 여름날이면 넓직한 마루에 누워 바람을 쐬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우리 것들이 좋아집니다. 빛이 바래고, 낡고, 녹슬고,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그래서 한편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마음에 더 간절히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오래된 사람도 그러하겠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