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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예천 초간정은 의구하되, 사람은 간 데 없구나

by 푸른가람 201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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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하였던가요. 맞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데 사람들의 모습만 달라졌습니다. 2년전 여름날 처음 초간정을 찾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초간정이라는 곳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제게 이날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 정자에 앉으면 시 한수가 절로 읊어질 것 같은 예천 초간정 : http://kangks72.tistory.com/758



 


 


2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다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새벽 일찍 회룡포에서의 일출을 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절정을 달리고 있는 계절답게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탁류 속에 가려져 있던 개울도 지금은 맑은 물빛을 되찾았습니다.

 


 


개울가를 따라 솟아있는 바위위에 주위의 자연석을 쌓아올린 모습은 볼 때마다 감동을 안겨 줍니다. 우리네 조상들도 보는 눈은 똑같아서 풍광이 뛰어난 곳에는 어김없이 정자와 누각들을 세워 놓았습니만 지금처럼 다 깎아내고 베어내는 무자비함은 항시 경계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잠시 머물러 쉬어갈 뿐, 그 누구도 이 경치를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했던 이도 없었구요.

 


비록 몇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지만 지금의 건물도 벌써 백년이 넘는 나이를 먹었습니다. 모든 목조 건물이 그렇듯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집은 이내 허물어지고 쇠락해 버리고 맙니다. 문화재 보호도 중요하겠지만 자물쇠로 꼭꼭 잠궈두는 것보다는 애정을 지닌 사람들이 기거하면서 먼지도 털어내고 식어버린 방에는 불도 지펴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탓인지 이날따라 이 비어있는 공간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루바닥을 걸을 때면 발이 시려옴을 느낍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계곡을 쉼없이 흐르는 물소리에 이내 묻혀 버리고, 잠시 누각에 서서 생각에 잠겨 봅니다. 지금의 풍경 위에 이 정자가 세워졌을 몇백년 전의 모습이 서서히 오버랩되는 듯 합니다.

 


 


 


 


주인없는 집에 소화기들이 마치 주인행세를 하는 듯 일렬로 도열해 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하나하나 쌓아올린 반듯한 돌담에서는 역시 사람 냄새가 나서 좋습니다. 모진 풍파를 견디고 지금껏 건재해 주었듯 초간정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떠나간 인걸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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