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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천년의 세월을 견딘 감은사지 삼층석탑 아래 마음을 묻어두다

by 푸른가람 2011.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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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경주에서 꽤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이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학창시절의 전부를 보낸 곳이 경주입니다. 꼬맹이 시절인 30년 전에 살았던 경주 풍경이 지금의 제게도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습니다. 1982년 9월 어느날 생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경주의 첫 인상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다 시피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입니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서도 신라처럼 천년 가까이나 유지된 국가도 드물 뿐더러 경주와 같이 한 도시가 단 한차례의 천도없이 수도로서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래서 신라를 빼고 경주를 얘기할 수도, 경주를 빼고 신라라는 나라를 논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신라의 멸망 이후 다시 천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화려했던 고대 왕국의 흔적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온전히 되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지금도 경주에 가면 구석구석에서 세월의 파편으로 남아 있는 천년 전 사람들의 손길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가 그저 여염집의 빨래판으로 쓰일 정도니 후세 사람들의 무지를 욕하기 보다는 지금도 풍성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경주에서 새로 뚫린 추령터널을 지나 양북 문무대왕릉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나즈막한 산 아래 우뚝 서 있는 두개의 탑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두 탑이 바로 감은사지 3층석탑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그 감동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아! 감은사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로 맺어야 했던 그 탑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경주에서 감은사로 가는 이 길을 우리나라에서 첫째, 둘째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길이라 극찬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에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산과 호수와 강을 끼고 구불구불 펼치는 이 길을 지나노라면 절로 탄성이 터져나올 겁니다.


터널이 생겨 경주에서 감포가는 길이 빨라지긴 했지만 예의 그 절경 중 일부를 잃어버린 아쉬움도 크게 느껴집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지요. 어린 시절 버스를 타고, 혹은 외삼촌의 오래된 트럭 앞자리에 올라타고 구절양장과도 같은 추령재를 넘던 오래된 추억이 오버랩되면서 혼자 웃음짓게 되네요.


감은사는 쌍탑일금당이라는 통일신라 절집 배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길이나 논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을 것이라 상상이 됩니다. 이곳에 세워져 지금껏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한쌍의 삼층석탑이 신라 조형예술의 절정인 석가탑의 시원이라 하니 그저 허투루 보아 넘겨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자주 보아왔던 탑이지만 오늘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쌍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이 감은사터가 쓸쓸하게 느껴지진 않았었는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복원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진 않을텐데 여백이 주던 '텅빈 충만'이 그저 외로이 느껴졌던 건 매서운 겨울바람과 빛 바랜 주변 풍경이 주는 황량함 탓일까요. 아니면  탑 아래에 마음을 묻어두고 간 그 누구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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