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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비에 갇혀있던 운문사에서 주인이 되다

by 푸른가람 201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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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닌다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한 편입니다. 물론 흐린 날은 흐린대로, 비가 오는 날은 또 그런대로 맛과 정취가 있는 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란 하늘이 여백을 채워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기왕의 여행길이 화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욕심입니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고, 맘에 드는 사진 한장 건질 것 같은 기대조차 들지 않은 그런 날이라도 어디든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그런 날도 있는 법입니다. 무작정 일을 접고 운문사로 떠났던 어느 여름날도 그러했습니다.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요, 운문사에 푹 빠져 있는 것도 아닌데 정처없는 떠남의 행선지가 운문사였던 것도 묘한 일입니다.




인연이라 부릅니다.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은 그저 인연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수월합니다. 다 그렇게 될 인연이었고, 그 곳으로 발걸음을 뗄 수 밖에 없었던 인연이었다고 말입니다. 무신경하게 다녔던 운문사가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오는 운문사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일 겁니다.







그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매년 막걸리 서너 말을 마신다는 처진 소나무 얘기로, 가을날 단풍잎이 노랗게 물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절 정도로 각인되어 있던 운문사를 다녀올 때면 이제는 운문댐 아래 잠겨져 있는 그 오래 전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세월을 함께 느껴보려 노력합니다.


이날의 운문사는 쉼없이 떨어지던 빗소리로 기억됩니다. 금새 그칠 줄 알았던 비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산사를 찾았던 무방비 상태의 나그네를 운문사에 고립시켜 버렸습니다. 간혹 우연처럼 만나게 되는 이런 고립의 시간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잠깐동안의 조바심은 이내 사라지고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이 나를 감싸 줍니다.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사람에 구애됨이 없이 그저 나 혼자만의 오롯이 누릴 수 있는 풍경이요, 자연의 소리요, 절대 고독의 시간입니다. 마치 모든 것이 이 순간 멈춰져 버린 듯합니다. 그 속에서 내가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천년 고찰 호거산 운문사의 주인도 나요, 비와 바람과 구름의 주인도 나요, 그 속을 또 쉼없이 흐르는 시간의 주인도 나인 듯 합니다.



만세루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젊은 남녀가 눈에 들어 옵니다. 함께 하는 이 순간의 한 부분도 놓치기 싫은 듯 연신 시간 속 풍경과 그네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 따뜻한 눈빛,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들이 바로 이 세상을 지탱해 주는 3%의 소금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어진 지 얼마된 것 같지 않은 대웅보전의 위풍당당함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돌로 자연스럽게, 너무 위압적이지 않은 높이로 석축을 쌓아 올려놓은 오래된 사찰들의 전각에서 느껴지는 자비로움이 느껴지지 않아서입니다. 사찰 지붕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기와 또한 이채로운데 아마도 월출산 도갑사에 있는 2층짜리 대웅보전의 모습도 그러했던 거 같습니다.






 잦아드는 빗속에 운문사 경내를 한바퀴 돌아 봅니다. 운문사 구석구석에 자신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빙긋이 미소를 짓게 되네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 속에 담겨있을 그 사람의 향기를 헤아려 봅니다.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고, 시선을 좇아 카메라로 그 사람의 흔적을 담아 봅니다.

* 갤럭시S2로 찍은 운문사 사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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