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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담양 식영정

by 푸른가람 201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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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은 유명한 것이 참 많은 고을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대나무가 많이 나는 고장이라 사회 시간에 배웠고, 나이를 먹어서는 떡갈비와 대통밥 등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을로' 라는 영화를 통해 소쇄원이라는 아름다운 원림을 알게 되고 나서는 담양을 정자의 고장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유홍준 교수 역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서 담양의 정자와 원림을 소개하면서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담양은 시가 문학의 중심지답게 수많은 누각과 정자와 원림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송강 정철의 흔적을 되살펴 볼 수 있는 송강정, 면앙정을 비롯해 소쇄원, 명옥헌, 환벽당, 취가정, 식영정까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돕니다.



한번 가기 힘든 담양을 서너차례 다녀오면서도 매번 소쇄원만 둘러보고 되돌아온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소쇄원을 지척에 두고 많은 정자들이 자리잡고 있는데도 무엇에 그리 쫓겼던 것인지. 이번에는 시간을 내 광주댐 넓은 호수 근처의 명소들을 모두 둘러볼 요량이었지만 그저 명옥헌과 식영정만 겨우 들렀다 온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광주호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식영정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식영정은 원래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인 임억령이 여기에서 쉴 수 있도록 만든 정자인데, 정자를 지으며 두 사람 사이에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 인연이 된 것이라 합니다.


광주호가 생기기 전에는 식영정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주 딴판이었을 겁니다. 자미탄이라 불리던 개울을 따라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았지만 광주댐이 생기면서 모두 수몰되었다고 하니 이것 또한 아쉬운 일입니다. 잠시 식영정 마루에 앉아 수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 옛날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유홍준 교수의 지적처럼 식영정 근처에 세워져 있는 성산별곡 시비는 식영정의 자연미를 크게 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인 성산별곡이 설 자리를 잘못 잡은 탓에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정자와 주변의 노송의 정취를 깨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 아쉬운 일입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래로 내려오면 서하당과 부용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하당은 식영정을 지은 서하당 김성원의 거처였는데 지금의 건물은 얼마 전에 새로 복원한 것이라 합니다. 김성원이 이곳에 서하당을 지은 것이 호남가단의 시초였다고 할만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작은 연못 가에 세워진 부용당이 노란 은행나무잎과 어울려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깁니다.



매번 이번에는 좀더 여유롭게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돌아오자고 다짐하지만 지나면 뭔가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아쉬움 덕분에 또 담양을 찾게 되는 것이니 그게 그리 나쁜 것도 아니겠네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 담양 여행은 담양의 원림과 정자에서 행복한 조화를 찾는 여행의 완결판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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