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이었던가요. 어느 일간지에서 붉게 타오른 불영계곡의 단풍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그저 환상적이라는 말로는 표현 조차 안되는 그런 느낌이었지요. 그날의 감흥에 이끌려 불영사를 몇번이나 다시 찾았지만 아쉽게도 계절을 비켜가는 것인지, 제 눈에 먼지가 껴서인지 늘 뭔가 아쉬움이 남곤 합니다.
울진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동네입니다. 어쩌다 팔자에도 없는 8개월간의 근무를 한 적이 있어서인지, 그리고 그 세월만큼 많은 추억을 안고 돌아와서인지, 늘 애착이 가고 아련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싶은 여행길에 울진을 행선지로 잡았던 것도 다 그런 이유였을 겁니다.
불영사를 생각하면 절 보다는 절에 이르는 십여분 남짓의 숲길이 늘 먼저 떠오릅니다. 물론 불영사도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전설의 연못도 있고, 단정하게 잘 정돈된 사찰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큽니다. 하지만 구불구불 끊어질 듯 시원스럽고 맑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 불영사 숲길은 어느 때 찾아도 늘 만족스러운 웃음을 절로 띄게 만들어 줍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이미 단풍은 절정을 지나 지쳐 버렸고 산 빛은 서서히 무채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이 호젓한 숲길을 이렇게 여유롭게 걸어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미 단풍이 졌다 한들, 내 마음 속에는 온통 붉게 타오르는 절정의 단풍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직될 수 있을 겁니다.
불영사를 오시게 된다면 이 곳에서 잠시 쉬어 가십시오. 비단 이 곳이 사진 속 단풍 명소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참을 걸어오다 조금 지칠 때쯤 만나게 되는 이 곳에 서서 굽이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 보세요. 그 맑고도 힘찬 소리에 부질없는 욕심과 까닭모를 미움들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저 잠시라도 좋습니다. 이내 불영사를 떠나면 다시 복잡미묘한 세상살이에 물들어 때가 끼고 마음의 빛이 바래도 상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속세를 살려면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어차피 삶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가끔씩은 이렇게나마 모든 걸 내려놓고 산이 되어, 바람이 되어, 물이 되어, 혹은 부처님의 마음이 되어 나를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주 아주 잠깐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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