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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올겨울 가장 추웠던 날에 문무대왕릉의 일출을 보다

by 푸른가람 2011.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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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기만 한 계절의 절정, 가을이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또다시 세상은 무채색이 지배하는 겨울 풍경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김없이 계절은 제자리를 찾아 오는 법입니다. 굳이 겨울바다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에 동해안의 일출 명소 경주 문무대왕릉을 찾았습니다.



애시당초 작품사진같은 일출 장면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습니다만 수평선을 따라 드리워진 구름은 중무장한 채 기다리고 있던 수십여명의 사진사들에게는 분명 아쉬운 존재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세찬 파도, 때때로 날아 오르는 갈매기떼 등 일출 사진을 좀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줄 소품은 충분했었는데 말입니다.

 


대왕암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경주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대왕의 수중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의 진위를 두고는 학계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역사적 진실이 어떤 것이든 지금껏 이곳을 찾았든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신화같은 추억을 간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일출 사진을 찍을 때면 늘 아쉬운 것이 많았습니다. 늘 결과물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일 탓일 겁니다. 날씨가 좀더 좋았더라면, 좀더 좋은 카메라와 렌즈가 있었더라면, 좋은 사진 찍는 방법을 좀더 배워왔더라면..어찌 보면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흥을 그대로 카메라에 옮겨 담는다는 것이 그리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좀더 많은 사진을, 좀더 나은 사진을 찍어 보겠다는 욕심보다는 좀 다른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시작하기 이전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당연하고도 쉬운 해결책을 저는 몇달 전 누군가의 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든 기분이 듭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으면 또 어떤가. 그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을 마음에 담아두었으면 이미 충분한 것이라 생각하니 한컷 더 찍어보려 분주히 움직이는 시간을 이제는 조용히 한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는 여유로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이런 분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좋습니다. 저 또한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 이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낮이고 밤이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날이 춥거나 덥거나 가리지 않았더랬습니다. 마치 모든 걸 삼켜버릴 듯 불어닥치는 세찬 겨울바람과 파도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열정에  얼었던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드는 기분을 느끼고 돌아올 수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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