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다 처분하고 이제는 폰카 하나로 만족해야지 생각했었다. 사진을 취미로 시작했을 때의 열정이나 호기심 같은 것들이 사라진지 오래되다 보니 그런 판단이 나름 합리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푹푹 찌는 여름날에도 무거운 카메라를 몇 대씩 들고 다니던 시절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있다가 없으니 또 허전한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 이따금씩 불현듯 미치듯 그리워진다. 다시 그 열정의 불씨를 되살릴 자신은 정말 없으면서도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그리움마냥 뷰파인더를 보고 샷을 날리는 구식 사진 찍기에의 갈망이 서멀서멀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캐논의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R8이었다. 예전에 RP 카메라에 35mm 렌즈를 물려서 나름 가볍게 사진을 찍었던 만족감이 있어서인지 다음번 카메라로 가벼운 플프레임 미러리스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가격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그나마 적당한 것이 R8 정도였다.
따로 적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뜬금없이 그 대항마로 등장한 것이 리코의 GR시리즈다. 가볍게 들고 다니며 찍고 싶을 때 편하게 찍을 수 있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 대충 찍어도 감성 사진이 나온다는 요즘 MZ들의 착각 속에 중고카메라도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 폭발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R8 바디 가격 이상을 호가한다.
휴대폰 정도의 크기라서 휴대하기 좋고 거창한 카메라가 아니기에 찍는 사람도 피사체에게도 부담이 적은 카메라. 비싸더라도 결국 물건의 값어치라는 것은 많이 쓰여질수록 효용성이 높아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늘 곁에 두고 찍고 싶을 때 찍을 수 있고, 대충 찍어도 어느 정도의 만족도는 줄 수 있는 이 똑딱이가 나한테 더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격이 미쳤다. 이 정도 성능의 똑딱이 카메라에 2백만원 가까운 돈을 들여서 중고 카메라를 들인다는 건 아무리 갬성에 미쳤다고 해도 아닌 것 같다. 다시 사진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선택은 R8이 좋을 것 같다. 이성은 정확하게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건만 이놈의 가슴이 말을 듣지 않으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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