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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여시' 김재박이 남긴 마지막 선물(?)

by 푸른가람 200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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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가 박종훈 전 두산 2군감독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여전히 여러명의 후보군을 놓고 저울질을 계속하고 있지만 김재박감독 자신도 퇴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서울팬들의 엄청난 기대 속에 친정팀 사령탑으로 금의환향했던 김재박감독은 초라한 성적표만을 남기고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김재박감독 재임 3년동안  LG는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전설적인 롯데의 '8-8-8-8-5-7-7'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5-8-7'만으로도 김재박감독에겐 치욕적인 성적표임에 틀림없다. 국내 최고의 지략가이자, 이기는 야구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가 바로 김재박감독 아니었던가. 천하의 '여시' 김재박도 깊숙한 곳까지 곪아버린 LG의 속병을 치유하는 데는 결국 실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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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마당에 김재박감독이 큰 선물 하나를 박용택에게 안겨줬다. 그 어느해보다 치열했던 타격왕 타이틀을 만들어 준 것이다. 박용택은 롯데 홍성흔과 시즌 막바지까지 주인공을 점칠 수 없는 타격왕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LG와 롯데가 잠실에서 만난 9월 25일 경기를 앞두고 박용택(.374)은 홍성흔(.372)을 2리 앞서 있었고, 김재박감독은 오늘도 박용택을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프로야구의 부끄러운 역사로 회자되고 있는 김영덕감독의 '이만수 타격왕 만들기'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마운드에 오른 LG 투수들은 하나같이 홍성흔만 타석에 서면 이상하게도 갑자기 제구가 되지 않았다.  추격자 홍성흔은 제대로 승부도 해보지 못한 채 안타는 하나도 추가하지 못했고, 볼넷 4개를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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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3루 관중석에선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홈팀 LG팬들조차도 박용택을 연호하며 정정당당한 마지막 승부를 벤치에 주문했지만 김재박감독의 신념은 확고했다. 김재박감독은 "박용택이 선수생활에서 여러번 맞기 힘든 좋은 기회를 잡고 있어 도와주고 싶었다"는 말로 제자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경기 내내 그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부끄러움이나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쓴웃음을 지어 보이던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창피한 작전이다. 매우 실망했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지만 아쉽게 2인자에 머물러야 하는 홍성흔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홍성흔은 "내가 1위를 하고 있었더도 우리팀 선수들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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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터 감독이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당연한 반응이다. 홍성흔의 넉넉한 마음도 보기 좋아 보인다. 그러나 홍성흔의 인터뷰가 박용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부끄러운 1인자는 언제든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박감독의 생각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서가 아닌 '우리팀 선수' 밀어주기가 데자뷰처럼 반복될 것이다. 프로야구판 자체에서 이런 생각들이 보편화되어 있다면 이것은 사실 심각한 문제다. '인지상정' 아니냐며 이해해주자면 끝이 없다. 그래서 '여시' 김재박감독이 LG와 박용택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을 받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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