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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아직 끝나지 않은 임창용 단죄

by 푸른가람 2009.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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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에게 행복한 3월을 선사했던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지도 며칠이 흘렀다. 모두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건만 유독 논란이 식지 않는 곳도 있다. 바로 WBC 준우승의 결실을 맺은 야구계가 그 곳이다. 다 잡았던 '대어'를 놓친 아쉬움이 그만큼 컸던 탓일까? 여전히 '임창용 단죄'로 시끄럽다.

시간을 되돌려 제2회 WBC대회 결승전이 열렸던 3월24일로 되돌아 가보자. 한일 양국의 자존심을 건 한판답게 결승전은 초유의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운명의 10회초. 9회초 일본공격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던 한국팀의 마무리 임창용은 10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1이닝을 넘기면 구위가 떨어지는 임창용의 볼끝은 이날도 시간이 흐를수록 여지없이 무뎌져갔다.

그러나 그 외에 대안이 없었다. 어차피 9회말 절호의 끝내기 챤스를 살리지 못한 한국으로선 연장 자체가 부담스러운 '보너스'였던 셈이다. 막강한 일본의 불펜진에 총대기령이 떨어진 반면, 한국팀엔 일본을 압도할만한 투수 자원이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이기느냐 보단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였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임창용은 10회초 2사 2,3루의 위기 상황에서 이치로에게 통한의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뿐만 아니라 이치로와의 정면승부를 피하라는 김인식감독의 사인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정면승부로 우승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호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영광스런 자리인 귀국기자회견장에서도 그는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전국민의 아쉬운 탄성이 잦아들 무렵 임창용에 대한 단죄는 시작되었다. 언론에서는 김인식감독의 인터뷰의 행간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채 그를 감독의 사인까지도 무시하고 무리한 정면승부를 펼친 선수로 비난했고, 네티즌들의 '마녀사냥'도 도를 넘었다. 물론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서 팀을 구해냈던 임창용의 WBC 활약상을 상기시키며, 결승전 무리한 등판의 희생양이었던 그를 동정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정론은 불처럼 번져나가는 비난 여론에 묻혀버릴 수 밖에 없었다.

사태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번지자 김인식감독도 임창용 구하기에 나섰다. 보다 확실하게 고의사구 지시를 내지 않았던 감독의 잘못이 크다며 임창용에게 더 이상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SK 김성근 감독 역시 "대표팀 마무리답게 잘 던졌고, 한 장면 때문에 임창용을 비난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지닌 야구인들도 많다. WBC 수석코치를 맡아 김인식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김성한 코치는 "분명 유인구로 승부해 이치로가 속지 않으면 거르라는 사인을 포수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임창용이 밋밋한 변화구를 던졌다"며 아쉬워했다. 해태와 삼성 시절 임창용과 오랜동안 함께 했던 김응룡 삼성 사장과 선동열 감독 역시 "임창용이 코칭스탭의 지시를 무시하고 정면승부를 고집한 것이 맞다"며 "이해할 수 없는 투구"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임창용의 말처럼 "뺄려고 했는데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실투"였을 수도 있다. 그 반대편에 서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는 이들의 넋두리처럼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정면승부"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진위를 가려 득될 것이 무엇일까. 만에 하나 임창용이 사인을 무시하고 이치로와 정면승부했다 치자. 그것이 마치 결승전 패배의 원흉이나 된 것처럼 무수한 비난을 한몸에 받아야 하는 큰 죄를 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가정은 가능하다. 이치로를 걸러 2사 만루를 만들어 후속타자를 범타로 막아내고 뒤이은 공격에서 1점을 짜내 영광스런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것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해서 이제 누구하나 스스로 나서지 않는 국가대표팀에, 부상까지 당한 몸을 이끌고 합류해 여러차례 고비를 넘겨온 팀의 마무리 투수에게 돌려주는 것 치고는 너무 치졸하다.

대표팀 선수들의 공과를 정량화해 평가하기는 어렵다.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큰 역할을 한 선수들도 많다. 그들이 마운드에서, 타석에서,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것이 없다해서 그들의 땀과 노력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마셔준 고마운 우리의 WBC 국가대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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