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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WBC가 낳은 신데렐라, 정현욱의 재발견

by 푸른가람 2009.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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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쉬운 준우승으로 막을 내린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는 끝났지만 여운이 많이 남아서인지 여전히 뒷얘기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 중에서도 이번 WBC가 낳은 신데렐라 정현욱을 빼놓을 수 없겠다. 애시당초 최종 엔트리에 오르리라는 기대조차 부담스러웠던 늦깍이 국가대표 후보에, 프로무대에서 십년이상 잔뼈가 굵었지만 내세울만한 기록도 없던 그였다.

올해 나이 서른둘. 프로선수로서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1996년 2월 동대문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 언제나 가능성을 인정받는 유망주였지만 해마다 시즌이 끝날 때면 변함없는 실망을 안겨주던 선수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4년 시즌을 마치고는 병역비리 파동에 휘말리며 늦은 나이에 군복무까지 해야했던 지지리 복도 없던 선수.

우여곡절끝에 2007년 팀에 복귀했지만 성적은 더욱 떨어졌다. 겨우 11경기에 등판, 14.2이닝을 던지며 5점대가 넘는 평균자책으로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절치부심했던 2008년 시즌이 없었다면 정현욱이라는 이름을 더이상 보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히 정현욱의 2008년은 잠재되었던 그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꽃을 피운 해라고 볼 수 있다.

무려 53경기(127이닝)에 등판하며 '정노예'라는 반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지만, 그는 팀이 원하면 어느 순간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며 마운드에 서있는 그의 모습은 90년대말 '애니콜'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애니콜에게는 그 혹사의 댓가로 당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정현욱에게는 그마저도 언감생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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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질곡의 세월 끝에 WBC 대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제2회 WBC 개막을 보름 정도 앞둔 어느날, 모 일간지의 기사 하나가 정현욱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뜻밖 행운, 우승까지 쭉"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최종 엔트리에 남게된 정현욱의 기쁨과 설레임을 대충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만했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기사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하지만 3년 전,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겁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일본과 미국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사람들이 정현욱을 ‘WBC 우승의 주역’으로 기억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니까요.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용한 무당을 만난 것인지는 몰라도 신데렐라 정현욱의 화려한 변신을 기가 막히게 예상하고 있다. 물론 아쉽게도 'WBC 우승의 주역'은 되지 못했지만 당당한 준우승의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대회가 끝난 뒤 무수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인식감독은 정현욱을 최고 수훈선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누구고 기대치 못했기에 그 활약이 더욱 값졌던 것이다.

당초 WBC에서 정현욱의 역할은 쉽게 말해 패전처리였을 것이다. 만만한 팀과의 경기에서는 주전투수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롱릴리프 정도의 역할도 기대했을 것이다. 그의 첫 등판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일본킬러 김광현이 속절없이 무너지며 치욕의 콜드게임패를 당했던 7일 일본전. 이미 초반 8실점의 충격속에 마땅한 카드가 없었던 김인식감독은 정현욱을 마운드에 올렸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로 일본 강타자들에게 밀리지 않았던 그의 배짱투구를 김인식감독은 눈여겨 보고 있었다.

이후 정현욱에 대한 대우가 180도 달라졌다. 3월 9일 1,2위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그는 박빙의 1:0 리드 속에서 1.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국민노예 정현욱의 불펜 성공신화가 서막을 알린 것이다. 미국에서 열린 2라운드에서도 그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힘좋은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멕시코, 베네주엘라를 만나서도 그의 무실점 완벽피칭은 빛을 더했다. 특히, 선발 류현진이 초반 난조에 빠졌던 멕시코와의 경기때 정현욱이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정현욱의 무실점 행진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종지부를 찍고 만다. 3월 24일 결승에서 만난 일본과는 무려 다섯번째 대결이었다. 한국은 0:1로 끌려가고 있었고 일본은 무사 1,3루의 챤스를 맞는다. 한방이면 사실상 승부가 결정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순간에 한국팀 덕아웃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고, 심드렁한 표정의 정현욱이 마운드에 올랐다.

야구전문가들은 물론, 중계를 지켜보던 야구팬들도 '제발 1점만으로 막자'던 절박한 기원에는 영 관심이 없었던 듯 정현욱은 믿기지 않는 삼진 퍼레이드를 펼치며 무실점 피칭을 이어 나갔다. 상대는 내노라하는 일본의 중심타자 조지마와 오가사와라였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오른 일본의 공격은 매서웠고 이후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거칠것이 없었던 정현욱도 한계를 드러낸채 결국 실점하고 만다. 7회초 일본은 연속 3안타로 정현욱을 두들기며 그의 무실점 행진을 멈추게 했다. 크고작은 펀치를 허용하며 그로기 상태까지 간 정현욱이었지만 결코 무릎꿇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위기에서 아오키의 큼지막한 외야타구를 추신수가 호수비로 잡아내자 힘을 낸 정현욱은 4번 조지마를 3루 땅볼로 병살처리하며 수비를 마쳤다.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정현욱은 오가사와라를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타자 우치가와에게 안타를 허용한 후 길고 길었던 여정을 끝마쳤다. 이전까지 한번도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았던 정현욱의 역투에 야구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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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욱은 이번 WBC대회에서 5경기에 등판해 10.1이닝을 던졌다. 경기수는 류현진, 임창용과 같고, 투구이닝은 봉중근과 윤석민에 이어 세번째다. 봉중근(17.2이닝)과 윤석민(16이닝)이 선발투수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 한국팀의 최고 '믿을맨'은 정현욱임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평균자책 또한 1.74로 봉중근의 0.51과 윤석민의 1.13에 이어 세번째로 좋은 수치다.

정현욱. 그는 "투수 엔트리 13명중에 열세번째 투수"라고 자신을 낮추던 선수였다. 애시당초 정현욱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코칭스탭도 그러했고, 어쩌면 정현욱 자신도 그러했을지 모른다. 운좋게 1,2차 엔트리에는 들어갔을 때도 결국은 짐싸들고 팀으로 복귀해야 하는 서글픈 운명에 놓일 것이라는 예상은, 그러나 보기좋게 어긋났다.

WBC에서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삼성의 노예에서 국민노예로 신분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노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현욱은 또한번 중요한 인생의 기로에 섰다. 2009년 프로야구 개막이 눈앞이다. 프로선수는 결국 성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그가 아무리 WBC 준우승의 주역으로 추앙받는다해도 팬들은 변덕스러운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올시즌 프로무대에서 생애 최고의 활약으로 당당히 노예신분을 벗어 던질 수 있는 2009년 정현욱의 해피엔딩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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