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지(瑞石池)란 이름을 풀이해 보면 상서(祥瑞)로운 돌로 만든 연못이란 뜻이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에 위치한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과 인조 때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石門) 정영방의 별장이었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소쇄원은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었던지라 ‘한국의 3대 민간정원’이라는 말만 듣고 기대에 부풀어 처음 이곳을 찾았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이라면 꽤 유명한 곳일 텐데 왜 알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서석지에 이르는 여정(旅程)에서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한 가치(價値)가 없어서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다. 소쇄원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라도 되었더라면 달라졌겠지만, 인구 2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륙의 섬’ 영양군에 자리 잡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도 한몫 했다.
첫 느낌은 솔직히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실망감이었다. 소쇄원의 다채로운 풍경을 기대하고 갔던 내게 서석지는 오래된 고택에 딸린 작은 연못에 불과했다. “직접 가보면 실망할지도 모른다”던 영양 사람들의 시큰둥한 반응들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하지만 분명 실망은 했으되, 서석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몇 평 되지도 않는 서석지가 소박한 아름다움과 유유자적(悠悠自適), 잘 가꿔진 전통정원의 조형미(造形美)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챙겨보면 서석지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석지는 공경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정자인 경정(敬亭)과 매화, 소나무, 국화, 대나무 등 네 가지 벗을 심어놓은 사우단(四友壇), 한 가지 뜻을 받드는 서재라는 뜻의 주일재(主一齋), 그리고 연당(蓮塘, 물속에 30개, 수면위로 드러난 60개 등 총 90개의 돌로 채워졌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마다 연당의 연꽃들이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7월 중순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물론 한여름의 연꽃도 아름답겠지만,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큼지막한 은행나무의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 가을 풍경도 참 아름답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찾아오는 이도 드문 경정을 홀로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서석지의 관리를 맡은 문중 어른이신지, 근처 마을에 사시는 분인지 알아듣기 힘든 혼잣말을 가끔 되뇌셨다.
구경 잘하고 돌아간다는 인사를 남기고 문을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조금 무거웠다. 다음에 다시 찾았을 때에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주시길 바라는 마음을 남겨두고 발길을 옮겼다. 은행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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