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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헐크 이만수와의 추억

by 푸른가람 201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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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전화 한통을 받았다. 발신번호를 보니 '이만수'라는 반가운 이름 석자가 찍혀 있었다. 오늘밤 방송되는 무릎팍도사 얘기며, 예전에 함께 하던 사회인야구단 사람들 얘기에 십여분 통화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간만의 통화지만 언제나 쾌활하고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정겹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꼭 안부 전해달라는 얘기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대구서 SK 경기가 열릴 때쯤 한번 만나자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옛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벌써 십년도 훨씬 지난 과거의 일이건만 그때의 느낌만큼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저 야구가 좋아 모였던 사람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프로야구 선수보다도 훨씬 뜨거웠던 사회인야구단 '달구벌 화이트제이스' 사람들. 비가 오는 여름날에도, 혹한의 겨울날에도 그라운드에 뒹굴었던 그때는 정말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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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대구중학교에서 열린 삼성라이온즈 팬클럽 서울-대구야구단 친선정기전에 함께 한 이만수 선수>

그리고 그 곳에 야구선수 이만수가 있었다. 이만수 코치를 처음 만났던 건 아마도 1997년 초가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즌 종료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부산 사직구장은 참 한산했다. 그 당시 롯데의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았기에 사직구장을 찾은 관중 수를 세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외야 관중석에서 삼성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다 용기내 "삼성 화이팅~"을 외치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데서 왔능교?" 투박한 대구 사투리의 주인공은 이만수 선수였다. 이만수가 누구던가? 그 당시 이미 전성기는 지나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만수는 삼성야구의 상징이요, 대구의 자존심과 같은 대스타가 아닌가. 그런 선수가 내게 말을 걸어 주다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던 이만수 선수와의 짧은 몇분간의 대화 덕분에 스타 이만수가 아닌, '인간' 이만수를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만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이만수 코치가 1997년 시즌을 마치고 구단과의 갈등으로 힘들어 할 때 나를 비롯한 야구단의 형, 동생들은 팬의 자격으로 기꺼이 그를 도우기 위해 나섰다. 강제은퇴를 반대하는 대구시민 서명운동을 대백 앞에서 갖기로 하고 집회신고까지 마쳤다. 그당시 천리안 삼성라이온즈 팬클럽 소속이었던 우리는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4대통신 연합으로 삼성구단과의 전면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다급해진 삼성구단이 연락을 해왔다. 4대통신 팬클럽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 김모 대리가 나왔다. 구단의 입장을 대변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턱이 없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선수" 라거나 "구단의 은혜를 무시한 배은망덕한 선수", "후배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퇴물" 소리까지 나왔다.

양 측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들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서명운동 준비는 진행되어 갔고, 운명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이만수 선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든 걸 잊고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그리고 삼성구단을 미워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순간 허탈했다. 이 일을 준비하기 위해 생계도 팽개치고 나섰던 이들도 있었지만, 그의 선택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쉬움 속에 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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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영남이공대에서 열린 3대통신 삼성라이온즈 팬클럽 야구대회때 팬들과 함께 한 이만수 선수>

그러는 동안 그는 화이트제이스 야구단의 고문을 맡아 주었다. 팀 연습때 나와서 지도를 해주기도 했고, 미국에 들어가 있을때도 귀국하면 꼭 잊지 않고 야구단을 찾아 주었다. 그때 약속했던 것이 있었다. 나중에 삼성 감독이 된다면 꼭 화이트제이스 야구단과 친선경기를 갖기로 말이다. 당분간 그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나중에라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때가 오길 기대해 본다.

아마 무릎팍도사 방송에도 얘기가 나오겠지만 그 당시 이만수코치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 힘들어서 혼자 샤워장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우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죽으려 맘먹었던 때도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에게서 나온 말은 사실 충격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늘 쾌활하고 밝게만 보이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안타까웠다.

하루빨리 국내 무대에 복귀하길 기대했지만 그 세월은 참 길었다. 도중에 삼성으로 복귀한다는 기쁜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삼성과 틀어져 결국 SK의 수석코치로 인천에 입성했다. 국내 복귀소식은 참 반가웠지만 대구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은 많은 삼성의 올드팬들이 공감하는 대목일 것이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언젠가 그가 파란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구장에서 활짝 웃을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십여년 전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듯 대구의 많은 팬들도 여전히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른다. 오늘밤은 무릎팍도사의 이만수 코치를 보며 향수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왠지 이밤 잠을 설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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